푸른교회 아카이브

바흐와 커피



17세기 초 유럽에서 점점 더 커피의 인기가 확산되자 이슬람권에서 유입된 문화라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1605년 교황 클레멘트 8세에게 <사탄의 음료>인 커피를 금하는 조서를 내려달라고 청원합니다. 교황은 이를 확인하고 판단하기 위해 여러 번 직접 커피를 시음해 본 후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립니다. <이 훌륭한 음료를 이교도들만이 즐기게 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앞으로는 기독교도들의 진정한 음료가 되어 악마의 콧대를 꺾어놓도록 내가 주의 이름으로 커피에 세례를 주노라.> 커피가 언제 누구에 의해 발견되고 음료로 개발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승인을 뜻하는 교황 클레멘트 8세의 커피 세례와 교서를 계기로 유럽 각국에서 수많은 커피 하우스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인들의 삶 그 자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현재 지구촌의 커피 인구는 수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심지어 우리에게도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으뜸가는 기호음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원두 캔커피 브랜드 가운데 <칸타타>라는 게 있습니다. 소지섭, 이민호, 현빈, 이하늬 같은 유명 배우들이 모델로 나온 프리미엄급 원두커피인데 그게 왜 하필이면 <칸타타>일까요? 아마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커피 칸타타>에서 착상한 것일 겁니다. 독일의 유명 작곡가들인 바흐, 베토벤, 브람스 ... 이들은 각각 활동한 시기는 서로 달랐지만 재미있는 공통점 하나가 있습니다. 모두가 지독한 커피 매니아였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아침마다 커피를 즐겼는데 그에게 작곡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던 영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니이테<1784-1877)는 베토벤의 생활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60알의 원두를 정성스럽게 고르고 볶고 갈아 드립한 커피를 마신 후 오전 내내 작곡에 몰두했다. 12시부터 1시 사이 점심을 먹고 곧 나와 함께 산책을 하였다. 나는 베토벤처럼 자연을 사랑하고 또 커피를 즐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가 로스팅한 원두 60알은 약 5g으로 오늘날의 커피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량이라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고 작곡만큼이나 공들여 커피를 내릴 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를 즐겼다는 브람스는 가정부나 집사 등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매번 자신이 마시는 커피를 직접 추출했으며 커피 맛에도 가장 까다롭고 예민했던 작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양 음악사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음악의 아버지> 바흐, 독일의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가 <바흐 작품 번호(BWV)>라는 걸 매겨 장르별로 정리한 작품만 해도 무려 1079곡, 그러나 실제 그가 작곡한 악보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많은 곡을 남긴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27년 동안이나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일하는 동안 매 주일마다 예배에 필요한 새로운 칸타타를 작곡해야 했고, 또 절기 때마다 <마태수난곡>이나 <요한수난곡> 같은 대작도 연주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흐의 곡은 90% 이상이 성가곡이며 자신의 지휘로 토마스 교회 성가대가 연주한 곡들입니다. 그런데 바흐의 곡 가운데는 성가 칸타타 만이 아니라 세속 칸타타도 몇 곡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바로 <커피 칸타타<BWV 211)>입니다. 그의 지극한 커피 사랑을 마치 작은 희극 오페라처럼 표현한 작품으로 모두 10곡으로 구성된 칸타타인데 커피 향에 푹 빠진 딸이 노래합니다. <아, 커피의 맛은 천 번의 키스보다 더 황홀하고, 오래 숙성된 포도주보다 더 달콤해요. 누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내게 커피 한 잔을 주세요!> 조수미 씨가 아주 맛깔나게 부른 제4곡 <아, 커피의 맛이란 정말 기가 막혀!>도 경쾌하기 그지없는 아리아입니다. 평생을 교회 안에서 살며 성직자처럼 오직 성가에만 몰두했던 바흐에게도 이런 유쾌한 일탈이 있었다니 참 흥미롭습니다. 바흐는 커피를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사치>라고 했습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저는 이 추수감사절 아침, 올해도 원없이 커피를 마시게 해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