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코랄(chor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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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바로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첫 발을 내디딘 종교개혁 498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 번은 개혁에 지친 루터가 낙심천만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그의 아내인 카타리나가 검은 상복을 입고 루터를 맞았습니다. 깜짝 놀란 루터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카타리나가 <상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루터가 <도대체 누가 죽었단 말이요?>하고 재차 묻자 카타리나가 뜻밖에도<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루터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무슨 망발이요? 하나님이 돌아가셨다니 ...?> 그때 카타리나가 정색을 하며 루터에게 되묻습니다. <그럼 안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다면 당신은 왜 그렇게 낙심하십니까? 하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루터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강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번쩍 차렸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계시지!> 그날 밤 루터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그의 대표작이 된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했고, 그 곡이 그의 개혁 사역에 평생 큰 힘이 됐습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교회의 모든 의식은 라틴어로 진행됐습니다. 찬양도 라틴어로 된 노래를 오직 성가대만 불렀고, 일반 신자들은 그냥 자리에 앉아 성가대의 찬양을 듣기만 할 뿐 직접 예배음악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루터는 그 점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일반 성도들이 다 예배음악에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창안한 새로운 양식의 교회음악이 바로 지금 우리가 <찬송>이라고 번역하는 <코랄>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음악의 개혁을 불러일으켜 예배음악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코랄은 음악적으로도 단순하고 쉬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어려운 라틴어가 아닌 모두 자기 나라말로 번역하여 부르게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루터는 교회력에 맞추어 주일 마다 전체 신자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코랄을 만드는 일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요즘의 찬송가는 모두 4성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루터가 만든 최초의 코랄들은 화음도 없고 반주도 없이 단지 신자들의 제창으로만 불리워진 매우 단순한 곡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화성과 대위법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형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 원석들이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루터에 의해 그 기초가 세워진 개신교의 예배음악은 그 후 음악의 아버지라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 의해 그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특히 바흐는 코랄을 기반으로 코랄 전주곡, 코랄 환상곡 등 다양한 형식의 교회음악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루터가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들이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노래 실력을 <형편없고 작고도 못난 목소리>라며 혹평했는데 노래를 만드는 실력, 플롯과 루트, 오르간 같은 악기 연주 실력은 대단했으며 전문 음악가 수준이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루터는 교회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열게 하는데 예배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인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교회가 성경을 가르치듯 그렇게 성가도 힘껏 가르치고 또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음악사적으로 볼 때 루터는 확실히 코랄이라는 새로운 복음적인 예배음악 장르를 개발하여 그 대중화를 실현한 현대적 찬송가의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그동안 예배의식에서 소외되었던 일반 성도들을 예배음악 속으로 깊이 끌어들여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들 조차도 자신의 모국어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한 교회음악의 진정한 개혁가였습니다.
2백 곡이 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지금 우리 찬송가에 실린 루터의 유일한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이요>(후에 바흐가 편곡한 것임)를 힘차게 한번 불러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