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51011n 성숙한 신앙인격(행 10:17-33)

20151011n

행 10:17-33

성숙한 신앙인격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초대교회 위대한 지도자 두 사람은 바울과 베드로입니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입니다. 바울이 의지가 강하고 초지일관한 사람이었다면, 베드로는 기복이 심했습니다. 바울이 탁월한 카리스마를 지녔다면, 베드로는 실패와 좌절을 통해 다듬어진 지도자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만나던 설익은 베드로, 미숙해서 실수를 연발하던 베드로가 시간이 흐른 뒤 사도행전 10장에 와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복음서 시대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사도행전에서의 베드로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우선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로 말하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일단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보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주님의 칭찬을 들었는가 하면 돌아서서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호된 책망을 듣던 사람이었습니다.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지만 돌아서서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다 경솔하게 말하고 행동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17절입니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이것은 자기가 본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19절도 보십시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그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는 신중하고 사려 깊어 졌습니다. 그만큼 성숙한 신앙인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를 거쳐 사도행전 시대로 오는 동안 사람이 바뀐 겁니다. 원래 그리스도인은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색을 많이 해야 합니다. 주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처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할 때 깨달음을 주십니다. ‘날아가는 새를 보라’는 말은 ‘날아가는 새를 생각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19절을 보면, 베드로가 환상에 대해 생각할 때 성령이 역사합니다. 주님은 생각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함석헌 선생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한 눈으로 지켜만 보실 뿐 서둘러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허둥대고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생각하지 않기에 뜻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생각한도 하면 세상 일을 생각합니다. 조금 전까지는 주님이 귀한 신앙고백을 했다고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베드로를 이렇게 호되게 책망하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결단을 이끄시고,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내가 꼭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베드로는 모든 편견을 극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한 편견은 살인적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선민인 자기들만 구원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방인은 지옥의 땔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편견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주어진 환상을 통해 그 편견이 깨졌습니다. 온갖 부정한 동물이 보자기에 싸여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명이 내려집니다. 베드로는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환상을 무려 세 번이나 봤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확신을 갖게 된 겁니다. 이방인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28절입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그 하나님의 입체적인 환상과 계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성령이 베드로에게 확실하게 깨달음을 준 겁니다. 그 살인적이던 민족적 편견을 극복하고 제 발로 이방인의 집에 찾아 왔습니다. 이게 고정관념과 편견을 깬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이런 편견을 깨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올 일도 없고,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유대인은 선교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 전 세계로 퍼지고, 바울이 이방인의 선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선교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대하든 항상 열린 눈으로 베드로처럼 봐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내일이 있음을 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성숙한 인격으로 변화되었고 새로워졌습니다. 


베드로는 겸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6절입니다.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천사의 계시로 자기 집에 베드로를 모시게 된 이방인 고넬료가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주님을 맞는 심정으로 자기 집에 들어서는 베드로를 향해 엎드려 절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깜짝 놀라며 나도 사람이라고 하며 고넬료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실 당시 베드로는 대단한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그의 설교 한 번에 삼천 명씩 회개했고,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오천 명씩 회개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익지 않은 벼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습니다. 교만이 하와를 타락하게 했습니다. 결국 사탄도 인간도 교만 때문에 망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탄은 교만의 영이요, 성령은 겸손의 영입니다. 베드로처럼 겸손하여 보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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