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51004m 가장 큰 계명(마 22:34-40)

20151004m 

마 22:34-40

가장 큰 계명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주님께 묻습니다. ‘율법 중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 주님의 답은 이겁니다. 37절 이하입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사는 단수로 물었는데, 주님은 복수로 답합니다. 율법사는 가장 큰 계명 하나를 물었는데, 주님은 두 개의 계명을 말씀하시며 그 두 개가 똑같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첫째, 둘째라는 계명이라고 하신 것은 첫 번째, 두 번째라는 순위 개념이 아닙니다. 39절을 보면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하신 것은 첫째와 둘째가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성경을 가리킵니다. 구약은 율법서와 선지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첫째와 둘째 계명이 똑같이 가장 큰 계명이요,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은 이 두 계명이 성경의 핵심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첫째와 둘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입니다. 이 두 계명이 똑같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모든 가르침이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님 사랑이라고 하는 종적 개념과 사람 사랑이라고 하는 횡적 개념이 교차될 때 비로소 성립됩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종대만으로는 안 되고 횡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크로스되어야 십자가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종대만 큰 게 아니라 횡대도 종대처럼 똑같이 크고 중요합니다. 


이 두 계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있어 우선순위가 하나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비로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그 사랑의 시너지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허풍입니다. 


늘 제게 ‘너는 뭐가 궁해서 날마다 예수 믿느냐고 그 난리냐’며 빈정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무신론자며 이 시대의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하며 끝까지 자기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며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덜컥 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죽기 두 달 전에 병실을 찾아 갔더니, 친구는 잠들어 있었고 간병하던 부인과 잠시 얘기했습니다. 자기 남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툭하면 욕하고 그래서 사람들과 원수가 되다시피 했다는 겁니다. 제게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병실로 갔더니 제게도 험한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목사니 기도라도 한 번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욕을 하며 떳떳하게 죽게 내버려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떳떳하게 죽어라고 했습니다. 돌아나오는데 제게 휴지통이 날아왔습니다. 제가 맞아서 운 게 아니라, 속이 상해서 울었습니다. 자기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하던 친구가 심지어 자기 아내와도 원수지간이 되어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도 슬펐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 사랑이 없으면 사람 사랑도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사랑과 행복은 가을에 커피 마시며 기분 좋게 나누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게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첫째 계명이 하나님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찬송가 1장이 ‘만복의 근원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복을 베푸십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십시오. 그게 정답입니다. 이것이 내 행복의 절대 비결입니다. 


다음은 사람 사랑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두 번째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듯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을 기준으로 삼아야 비로소 이웃 사랑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사랑의 전제가 하나님 사랑이듯 이웃 사랑의 전제는 자기 사랑이라는 겁니다. 사람 사랑의 이 수순을 명심하십시오. 이웃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각보다 많습니다. 나는 바보야, 나는 멍청해, 나는 구제불능이야, 내가 뭘 하겠어, 난 죽어야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사람이 남을 포용하고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부터 용서하고 긍정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고 고문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정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극복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감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험하게 되면, 내가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체험하게 되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학하지 않게 됩니다. 함부로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내가 얼마나 못 되게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내 못된 삶을 용서해? 이 사실을 깨달으면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받아주신다는데, 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학대하며 저주하는가? 하며 회개합니다. 그럴 때 나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저주하면, 이웃도 저주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이웃에게도 관대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조금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칼끝처럼 날카롭습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너무 자주 화를 내면 이웃을 대할 때도 똑같아 집니다. 하루 종일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해를 해서 피를 흘리는데도 멈추지 않고 자학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똑같습니다. 끝까지 남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주님이 일러주신 대로 먼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십시오. 목숨을 걸고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말입니다. 우리 사회 자살자 수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OECD 회원국 중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똑같은 무게의 가장 큰 계명이고, 똑같이 신구약 성경의 으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수순은 다릅니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고, 그 다음이 사람 사랑입니다. 사람 사랑도 자기 자신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모델로 자기를 사랑하시고, 자기 사랑을 모델로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성경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이 사랑에 충실해서 주 안에서  름다운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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