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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비와 자식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비와 자식 이야기


영화 <사도>를 봤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사도 세자>와 그의 아버지 <영조>에 관한 이야기, 영화 내내 비극과 슬픔의 감정이 가슴에 휘몰아칩니다. 영화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여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만이라도 평범한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의 슬픈 가족사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영조는 어째서 자기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영화는 영조가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딜레마와 콤플렉스, 인간적인 고뇌를 가감 없이 다 드러냅니다. 또 한때는 살가운 부자 관계였던 영조와 사도 세자가 그 후 어느 지점에서부터 치명적인 갈등관계로 돌아서게 되었는지도 밝힙니다. 그리고 더는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의 과정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나갑니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비장미와 영조와 사도 세자간의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의 줄이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입에서 연신 한숨과 탄식이 새어 나오게 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는 각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감독의 <설득력>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왕과 세자라는 엇갈린 관계를 풀어내는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 <사도>는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라 결론부터 미리 보여주는 선결론 구조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요즘 영화들에서 흔히 보는 막판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 같은 건 없습니다. 오로지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만을 농밀하게 그릴 뿐인데 사도 세자와 영조로 분한 두 주연 배우의 넋 나간 연기의 춤사위가 아름답게, 때로는 숨 막히게 관객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며 슬픔의 강을 건넙니다. 특히 뒤주 안에서 죽어가는 아들 사도 세자 앞에서 단발마와도 같은 애끓는 대사들을 허공에 뿌리는 영조의 긴 독백 연기는 송강호라는 연기자의 미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깊이 각인시키기에 족했던 것 같습니다.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생모 영빈을 모시고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날뛰는 광인 사도의 모습 또한 영화관 전체를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릴 만큼 압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자식의 삶이 곧 부모의 인생이 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자식이 잘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 잘 벌면 그 자식 자랑하며 늘 어깨를 펴고 살지만 반대로 자식이 못되면 이웃들 동기들과도 관계를 다 끊고 사는 부모들,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자식의 삶을 부모의 삶에 링크시켜 몸은 달라도 부모 자식이 같은 인생을 살까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들씌워 자식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한풀이 때문입니다. 부모가 늘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영조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러나 둘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예법과 학문에 충실하길 바랬고, 아들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사도>는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이 되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자식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아들을 향한 무한 사랑과 함께 강요되는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려 서서히 미쳐가는 사도 세자의 안타까운 모습에서 자꾸만 우리 시대 부모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 또한 제 발이 저려서일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아바타가 아닙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사도>의 슬픈 목소리가 이 시대 아비들의 가슴을 치게 합니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뿐이었소!> 


가족단위 추석 영화로 제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