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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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제3차 생물 다양성 보고서>는 지구 생태계에 현존하는 생물이 20분에 1종씩 소멸해 가고 있으며 향후 30년 내 지구 생물의 4분의 1이 멸종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멸종사태>는 심령이 맑고 깨끗한 인간 유형이 빠른 속도로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구의 멸망은 핵폭탄이나 기상이변, 혹은 지진, 행성과의 충돌 같은 재난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내면이 썩고 혼탁해지는 데서 올 것이라는 말이 더 옳을 듯합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환경위기나 생태계 파탄도 결국은 다 육신과 정신이 시커멓게 오염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간 공해의 산물들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구원하고 탄식하는 피조물을 해방시키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영을 받은 새로운 인간의 출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의 탄생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120명의 성도들이 소위 <방언>을 통해 그 사실을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언이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령한 언어>가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초대교회 안에 일으킨 첫 번째 변화가 바로 <방언>이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자리에서 서로 뜻을 통하고자 한 대화의 가장 모범적인 원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당시 세계 도처에서 온 순례객들이 성령에 취한 성도들의 방언을 각자 자기 나라말로 들으며 놀라워했다는 것은 성령 받은 성도들의 외국어 기적에 그 초점이 있기보다는 초대교회가 자기들의 언어와 논리만을 도도히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내가 먼저 그들의 언어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를 이방 선교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증언하려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철저히 자신들의 언어만을 강요하며 약한 자들의 소리를 억압했습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절의 방언은 그 <일방적인 언어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하나님의 영> 안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음을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것이 바로 출신과 문화, 계급, 성별의 차를 뛰어넘어 서로 뜻이 통하고 말이 통했던 초대교회 소통의 진정한 힘이었던 것입니다.
<나>만 고집하지 않고 <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너의 언어>를 나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의사소통의 모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약한 자들을 위한 참된 <방언>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힘없는 자들의 고난과 탄식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합니다. 더구나 초대교회가 방언을 통해 증거한 메시지의 요체는 바로 <주님의 부활> 아니었습니까? 따라서 방언은 본디 철저한 <생명의 언어>였습니다. 우리의 부패하고 타락해 가는 인간성과 소진해 가는 지구의 기운을 되살릴 생명에 관한 증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원초의 방언이야말로 폭력과 살인, 미움과 증오의 광기에 사로잡힌 이 세상 언어질서를 정화하고 사랑과 평화, 창조의 생명 언어를 부활시켜 인간을 되살리고 세상을 구원하자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이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지구와 평화로운 미래를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생명의 언어>인 방언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파괴와 미움으로 얼룩진 마음과 언어 공해, 인간 공해로 찌들어 가는 이 지구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며, 또 그렇게 방언으로 소통하며 생명을 증언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인류의 미래인 <새로운 인간>일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