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슬픔과 근심(잠 14:13-22)

슬픔과 근심
잠14:13-22
2011.06.04

퍼시 비시 셀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는 <기껏 웃어본다는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고통이 도사렸고, 한껏 기쁨을 부르는 노래 속에도 언제나 한없는 슬픔이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13절). 
그렇습니다. 슬픔과 근심은 인생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모두가 시침을 떼고 멀쩡한 표정을 짓고있지만,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면서도 겉으로는 즐거운 표정을 연출할 뿐 인생은 누구나 슬프고 고뇌에 찬 존재들입니다.

마음이 굽은 자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 그리하리라>(14절).
우리는 왜 늘 슬퍼하며 근심하게 될까요? 곧지 못한 마음으로 행한 삶의 온갖 보응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 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둡니다. 지난 세월 굽은 마음으로 뿌린 많은 악한 씨앗이 오늘 슬픔과 근심이 되어 돌아 온 것입니다. 이제 더는 어리석음의 씨앗(15절), 방자함과 악함의 씨앗(16절), 노함과 미움의 씨앗(17절)을 뿌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 마음이 굽은 자들의 악한 행위며 그런 삶에는 반드시 슬픔과 근심의 보응이 따릅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21절).사람은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다 하나님의 분신들입니다. 만약 누가 그 이웃을 멸시하고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모독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신에 대한 모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웃을 업신여기는 죄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응징하시고 심판하사 슬픔과 근심을 더하시며 고통과 아픔을 면치 못하게 하십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남의 인권을 유린하는 자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인권정책이 최우선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권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웃의 하나님의 형상성을 침해하거나 범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결코 그 삶에서 슬픔과 근심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22절).
<악을 도모하므로 잘된 길을 가는 자>란 늘 악을 향할 뿐 아니라 더 큰 악을 도모하기 위해 궁리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설마 그런 자들이 있을까 하신다면 그것은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이 시대의 악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신 겁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악하며 우리가 막연하게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악한 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과 근심이 끊이지를 않고, 눈물과 아픔도 쉴 날이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악을 도모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 있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응징은 계속될 것이고 이 땅의 슬픔과 근심과 눈물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보십시오. <선을 도모하는 자>들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의 인자와 진리가 있는 곳에 왜 슬픔과 근심이 임하겠습니까? 부디 악이 아니라 선을 도모하십시오. 슬픔과 근심이 아니라 인자와 진리로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