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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w: 고린도후서 강해 10(고후 6:1-10)

2008년 5월 14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10
본문: 고후 6:1-10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절 상반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 구절은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구절은 이사야 49장 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실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의 날이 이르러야 비로소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니까 은혜와 구원도 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해 우리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은혜의 때가 언제냐면 ‘지금’입니다. ‘지금’이 우리의 구원의 날입니다. 항상 지금처럼 우리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구원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가 지나면 아무리 우리가 은혜를 사모해도 안 되고, 구원을 누리려고 애를 써도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때이고,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은혜의 날과 구원의 때인 ‘지금’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많이 견디고 참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4-5절입니다: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오래 참아야 하고 잘 견뎌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래 참지 못하고, 오래 견디지 못해서 얼마나 자주 받은 은혜를 헛되게 만들었습니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값지게 했다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환난과 궁핍과 시험을 참고 견디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고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세대는 더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지 못합니다. 우리 세대보다 더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지 못합니다. 5절을 보면 ‘매맞음’, ‘갖힘’, ‘요한한 것’ 등은 바울이 견딘 고난입니다. 바울이 맞은 매는 40에 하나 감한 매입니다. 율법에 39번만 때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벌입니다. 얼마나 가혹했던지 한 대만 더 때리면 죽습니다. 그래서 39대만 때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매를 무려 5번이나 맞았습니다. 이렇게 맞으면 등짝이나 엉덩이가 너덜너덜해 집니다. 이런 혹독한 매까지 다 참고 견딘 사람이 바울이고, 그랬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매맞음도 견디고, 배고픔도 견디고, 난감한 일과 곤란한 일을 다 참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서 빛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지 못해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을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참지 못해서 문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설적인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8절 이하입니다: “[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문자 그대로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 같으나 가장 정직하고 참된 사람입니다. 무명한 자 같지만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지만 살아있는 자요, 가난한 자 같으나 실제로는 부자요, 근심하는 자 같지만 기뻐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고, 인간적인 잣대로 보면 한심해 보이고, 세상적으로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위대한 성인들도 다 그랬습니다. 가장 못난 생활 같지만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던 인생들이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형이 바로 역설적인 삶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상적인 삶이 바로 역설적인 삶입니다. 주님은 죽어야 산다고 했고, 자기를 낮추어야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서 죽어야 살고,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를 가야하고, 왼편 뺨을 치면 오른편 뺨을 돌려대야 합니다. 주님도 그대로 살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삶을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갖추었다’고 했고, 그래서 모든 이름을 그의 무릎에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권면하는 말씀, 곧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이것을 우리 삶에서 늘 구현하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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