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3m 모노 야웨이즘(전 1:12-18)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150913m
전 1:12-18
모노 야웨이즘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지난주 목요일(9.10)이 WHO가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습니다. 여러분, 자살로 지구촌을 떠나는 사람이 한 해 100만 명이 넘습니다. 지난달 공개된 <OECD 건강 통계 2015>라는 문건을 보면 2013년 현재 우리나라가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입니다. 그런데 이게 11년째 톱입니다. OECD 평균 인구 10만 명 당 12명인데, 우리나라는 29.1명입니다. 평균 2.5배가 더 높습니다. 2위인 헝가리의 19.4명보다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터키 2.6, 그리스 4.2, 멕시코 5, 이태리 6.3명에 비하면 5-10배나 높습니다. 이 순간도 43분에 1사람씩 자살합니다. 하루에 33명, 일 년에 12,407명이 자살합니다. 65세 노인들의 자살률은 10만 명 당 무려 81.9명입니다. 10대와 20대의 사망원인 1위도 자살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지구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자살 공화국입니다. 정말 할 말이 없고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사회병리현상이기에 그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 가운데 허무의 문제를 깊이 다루는 전도서가 말해주는 해법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전도서는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다 헛되다고 합니다. 1장 2절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런 허무의 노래가 없습니다. 본문 14절도 보십시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자는 어느 시대나 인생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지적하면서 그런 것들의 허무함을 제대로 깨닫고 바르게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인생에 실패한다고 합니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그러면 그게 뭡니까?
우선 지성주의입니다. 지식입니다. 오직 지성을 추구하는 인생관입니다. 우리나라도 제가 볼 때는 지성주의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유교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유교에서는 학도(學徒)를 가장 높이 평가합니다. 늘 글을 가까이하는 선비는 뭘 해도 다 용서가 됩니다. 가난해도, 심지어는 첩을 두어도 용서됩니다. 공자님이 말한 군자(君子)라는 개념도 결국은 학덕을 가진 엘리트를 지칭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맹목적 지식주의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공부 못하면 더는 사람도 아닙니다. 아직도 대학 못 가면 죽는 줄 압니다. 그래서 대학진학율이 세계 1위입니다. 인구대비 대학진학율도 1위, 박사학위 취득율도 1위입니다. OECD는 50프로 남짓한데, 우리나라는 70프로가 넘습니다. 외국 사람은 학위를 목표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유학을 가면 반드시 학위를 따야하고, 학위에 실패하면 그것은 인생의 실패를 뜻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성공률이 높습니다. 요즘은 학위를 받아와 봐야 취직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무조건 대학이고 학위입니다. 전도서의 저자가 누구입니까? 저 유명한 솔로몬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아니 당대뿐이겠습니까?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한 인물입니다. 내노라는 석학과 현자가 도처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겠다며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런데도 보십시오. 유일무이한 지혜의 왕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15절입니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이것은 지성주의를 무색케 하는 인류사 최고 지성인의 고발입니다. 우리는 흔히 박사면 모르는 게 없고, 만능인 줄 압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혜도 지식도 구부러진 것 하나 굽게 할 수도, 모자란 것 하나 더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성주의의 한계와 허구에 대한 고발이면서, 지식에 대한 맹신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실 아닙니까? 고도의 지식도 첨단 정보도 구부러진 인간성을 바로 잡거나, 비뚤어진 인간 영혼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병든 인간 영혼을 고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여기에 나오는 미친 것, 미련한 것, 바람을 잡는 것이란 말은 지식을 좇는 인생을 원색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18절 말씀은 더합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우리는 지금 뼈 빠지게 벌어 아이들 교육 뒷바라지 하고 있는데, 대체 이게 무슨 김 빠지는 소리입니까? 이게 실은 사실 아닙니까? 한창 공부할 나이인 10대 20대의 자살율이 그 사실에 대한 반증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대 지성만으로는 안 되고, 거기에 반드시 플러스 알파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허무주의를 노래하며 지시한 플러스 알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경외입니다. 하나님 경외가 전제가 된 후에 거기에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경외 없이 쌓는 지식은 근심과 고뇌와 허무만 더할 뿐 절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쾌락주의, 향락주의입니다. 이것은 전도서 2장 1절 이하 1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쾌락주의는 쾌락이나 향락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내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의 철학입니다. 어느 시대나 가장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 가치관이 쾌락주의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자는 주의입니다. 열심히 벌어 호화롭게 인생을 즐기자는 겁니다. 인생에 값진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이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삽니다. 여러분,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역사상 로마보다 더 강성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왜 망했을까요? 로마제국의 흥망사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에 무너졌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내부의 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의 철학이었던 에피큐리즘(쾌락주의)이 그들을 망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각국에서 공수해온 온갖 부로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 쾌락주의 때문에 망했습니다. 귀족들은 식탁 위에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먹다가 배가 부르면 식탁 아래에 준비해 놓은 요강에 다 게워냈습니다. 그리고 또 먹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즐겼습니다. 가난해서 망하는 법은 없습니다. 향락 때문에 망합니다. 로마든 폼페이든 다 쾌락주의로 망했습니다. 전도서 2장 3절은 술로 인생을 즐기는 자의 헛됨을 꼽고 있고, 4절은 사업을 번성케 하여 즐기려는 자의 부질 없음을 지적합니다. 8절에서는 가무와 첩 얘기를 합니다. 솔로몬은 1,000명 이상의 첩을 거느렸고, 심지어는 외국에서 미녀를 수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주색잡기도 그에게 만족과 보람을 주지 못했습니다. 쾌락주의는 언제나 화려하고 행복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 내면에는 견딜 수 없는 허무가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2장 10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그러나 결국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1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이것은 이 시대의 쾌락주의자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말씀입니다. 인생은 절대 쾌락을 위해, 향락을 목표로 살 수 없습니다. 거기엔 행복, 기쁨이 없고 허탈, 공허뿐입니다. 그럼에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쾌락과 향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십시오. 모든 게 쾌락중심의 향락문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장로교신조 요리문답 제1조는 인생의 제 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나를 즐겁게 하고 세상을 향락하자는 게 내 삶의 궁극적 목표와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게 솔로몬의 가르침입니다.
다음은 물질주의입니다. 이것은 2장 18절이하 26절까지 나오는 말씀입니다. 맹목적 지성주의나 쾌락주의도 문제지만, 물신주의, 맘모니즘, 배금주의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돈이 많으면 점점 타락하다가 온갖 미친 짓을 하다가 죽습니다. 가난해서 먹고 살기 바쁘면 죄 지을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 많고 시간 많으면 정말 죄 지을 일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하루 종일 죄지으며 삽니다. 사람 하나 망하게 하려면 돈 주고 시간 주고 건강 주면 백발백중이라고 합니다. 딱 1년이면 됩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습니다만, 로또 1등 당첨자들 보십시오. 행복합니까? 차라리 가난할 때는 건강하고 행복했는데, 돈벼락을 한 번 맞으면 가정도 깨지고 친구도 다 잃고 건강도 잃고 전보다 훨씬 더 불행해졌다고 합니다. 원래 돈의 생리는 그렇습니다. 처음엔 사람이 돈을 법니다. 그때는 괜찮습니다. 보람도 있고 행복도 느낍니다. 다음은 돈이 돈을 법니다. 이때부터 슬슬 문제가 발생합니다. 돈 버는 재미에 흠뻑 빠져 서서히 돈에 홀립니다. 그 다음에는 돈이 사람을 삼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다 돈 때문에 망하고, 폐인이 되고, 돈 때문에 자살합니다. 가룟유다도 돈 때문에 망했습니다. 돈을 믿지 마십시오. 절대 돈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돈이 행복을 준다고 우리를 꾑니다. 거기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부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지식도 쾌락도 돈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우리에게 참 기쁨과 행복을 보장합니까? 이 문제에 대한 솔로몬의 해답이 모노 야웨이즘입니다. 하나님 절대주의,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우선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내 모든 걸 거는 삶의 철학입니다. 모노 야웨이즘 만이 유일하고 절대적 대안이요, 우리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그 자체가 허무입니다. 지성도 쾌락도 돈도 다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우선주의가 전제되어야 지식도 쾌락도 돈도 의미가 있습니다. 모노 야웨이즘이 내 삶의 철학이 될 때에만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다 지성만을 좇고 쾌락만을 좇고 돈을 좇으며 살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절대주의를 추구하십시오. 여기에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으십시오. 그래야 내 인생이 허무하지 않습니다. 자살의 유혹과 충동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 절대주의를 마음 깊이 다짐하고 결단하십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YouTube 시청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