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2m: 사람이란?(창 1:26-28,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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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2일 주일낮예배
본문: 창 1:26-28, 2:4-7
제목: 사람이란?
<창 1: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2:4-7>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입니다. 물론 이것은 철학적 인간학이 아니라 성서적 인간학을 묻는 질문입니다. 성경은 대체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선 성경은 사람을 <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본문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의 생기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루아흐>입니다. 루아흐를 흙으로 빚은 사람의 코에 불어 넣었더니 <생령>이 된 겁니다. 생령은 히브리말로 <네페쉬>라고 하고, 영어로는 소울(Soul), 독일어로는 젤레(Seele)이고, 라틴말로는 아니마(Anima) 입니다. 인간만 네페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태초에 흙으로 빚었기에 육적인 존재인 동시에 네페쉬이기에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육적인 욕구도 충족시켜야 하지만, 영적인 욕구에도 응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은 떡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일용할 양식이 밥이라면, 영혼의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영혼을 지닌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영혼의 건강도 챙기십시오. 영혼이 병들면 다 무너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루아흐를 받은 네페쉬입니다. 영적인 존재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고 우리 영혼에도 관심을 둡시다.
성경은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본문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어지는 27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대충 흙으로 만드신 게 아니라, 설계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 본(本)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라틴말로 이마고 데이(Imago Dei)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형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형상을 초월해 있습니다. 형상이란 말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성립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기에 형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외모를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품격>을 뜻합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오랜 전통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고유한 신격(神格)을 닮은 인격(人格)이 있습니다. 물론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 곧 신격(神格)에 비하면 상대적입니다. 하나님의 품격에는 지성, 감성과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성과 의지와 감성의 본체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인격적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도 인격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인격적인 존재가 무시되면 인간관계가 깨집니다.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충분히 알아야 하고, 깊이 사랑해야 하고, 무릎 꿇고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만나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결혼도 이러한 인격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인격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건강합니다. 왜 황혼 이혼이 급증합니까? 인격적인 관계의 순리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본체이신 신격적인 존재로서 우리를 당신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도 그리고 횡적으로 이웃을 만날 때 인격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만남에 파탄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막판에 가서도 이혼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관계적 존재>라고 합니다. 본문 1장 26절 상반절을 다시 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형상뿐만 아니라 모양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모양은 라틴말로 시밀리투도 데이(Similitudo Dei)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양식의 모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십니까? 교리적으로는 삼위일체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라는 모양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세 분 하나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 세 분이 완전하고 완벽한 공동체로 존재하기에 일체(一體)라는 겁니다. 세 분이 각자의 독자적인 위상을 가졌으나, 이 세 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살기에 한 분으로 산다는 겁니다. 머릿수로는 세 분인데, 그 세 분이 동심일체(同心一體)를 이루며 산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공동체를 이루며 삽니다. 바로 이런 모양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요 순리입니다. 하나님은 <엘>이 아니라 <엘로힘>입니다. <하나님들>입니다. 본문도 하나님이 자신을 일컫기를 <우리>라고 합니다. 복수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남과 더불어 소통하면서, 교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지은 겁니다. 이런 순리를 역행하면 실패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호흡을 잘 맞추고, 이웃과도 호흡을 잘 맞추고, 자연과도 호흡을 잘 맞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처럼 사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는 겁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고 구현하며 사는 복 된 성도 되십시다.
설교 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HvhSRGRcop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