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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50830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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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고후 12:5-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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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약한 것을 자랑하는 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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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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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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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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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바울의 고난에 대한 해석은 우리와 아주 다릅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나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고, 이기려고 하는데, 바울은 오히려 고난을 감사하고 고난에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고 합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고통을 피하거나 견디거나 극복하려고 하는데, 바울은 고통을 복과 은혜로 해석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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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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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바울은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약함 속에서 보다 완전해진다는 역설의 진리를 깊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약한 것은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치부인데,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마치 강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약함을 시위하고 있습니다. 가히 역설의 극치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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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5절 하반절입니다.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9절도 보십시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1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 얼마나 철저한 역설입니까. 그런데 성경의 교훈이 다 역설입니다. 썩어야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합니다. 자기를 낮춰야 높이신다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극단적인 역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꾸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이 잘 나갈 때 거기서 오히려 망조를 보고, 세상이 절망할 때 그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강함 속에서 약함을, 약함 속에서 강함을 깨닫는 게 기독교 신앙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나갈 때도 마냥 기뻐하지 않습니다. 망했을 때도 죽들 듯 좌절하지 않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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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본문은 바울의 생생한 체험담입니다. 바울에게는 불치병이 있었습니다. 혹독한 고통거리였습니다. 몸에 가시가 박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사자라고까지 했습니다. 사탄의 저주라는 뜻입니다. 사탄이 자기를 저주해서 몸에 가시가 박혔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도 바울에게 저주라고 느꼈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입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병 하나도 못 고치는 주제에 무슨 남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선포하느냐고 하지 않고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은 천사처럼 맞아줬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자기 몸의 가시를 처리하려고 간절히 하나님께 세 번 기도했는데, 주님은 응답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 하십니다. 너는 저주라고 생각하고, 사탄의 사자라고 해석하지만, 그것은 은혜이니 감사하라고 합니다. 약함이나 아픔이 실은 다 은혜라는 겁니다. 바울은 놀라운 계시를 받은 겁니다. 바울은 남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바울만큼 놀라운 복과 은사를 받은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놀라운 은사 때문에 자칫 교만하거나 실족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불상사를 사전에 막기 위해 하나님이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 바울이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가시, 약함, 치부를 자랑한다고 한 것입니다. 저주가 아니라 은혜ㅇ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절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아픈 가시를 족하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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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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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지금 우리는 힘을 숭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키우기 위해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약한 게 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쓰심으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약한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할 것입니다. 약한 게 복이요 은혜입니다. 약한 것을 자랑해야 맞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역설입니다. 약한 것을 치부라고 믿는 사람은 약한 게 그 사람의 약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약한 것을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맛봅니다.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내가 강함을 드러내면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약해야 하나님이 당신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할 때 강하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5장 8절 이하를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 나옵니다.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주님조차도 고난을 통해 온전해 지셨다면 우리는 말해야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은 약한 데서 온전해지고, 약할 때가 강할 때라는 게 바로 이런 뜻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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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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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요즘 부모는 아이들을 편하게만 키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아이를 망칩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야 비로소 생각을 합니다. 편하면 그저 반사적으로 삽니다. 고난을 당해야 비로소 진지해지고 겸손해 집니다. 배부를 때, 건강할 때 기도원 가는 사람 없습니다. 위기가 닥쳐야 기도합니다. 배부르면 예수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신앙도 편할 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 긴장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도 이해하며, 겸손해집니다. 어려울 때 보다 정직해지고 진지해집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체험합니다. 진정한 감사와 찬송도 편할 때는 거의 불가능하고, 어려울 때 절절한 찬송과 기도가 나옵니다. 은혜도 어려울 때 깨닫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쌍둥이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은 분명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피해서 영광을 주시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영광을 주십니다. 마치 엄마가 죽을 산통을 겪은 후에 비로소 아기를 품에 안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큰 병은 좌절감, 자포자기입니다. 설령 나는 내 자신을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절대 자기의 삶을 포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어느 면전이라고 나는 이제 끝났다고 합니까. 그런 말을 들으시면 하나님은 불쾌하십니다.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은혜가 큽니다. 고난이 찾아왔다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생각하십시오. 고난을 통해 가이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선제적으로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그 무엇도 버릴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요리하셔서 어떤 선으로 연출하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고난 속에서 희망을 보십시오. 약함이 축복이요, 고난이 은혜임을 믿으십시다. 바울은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약함이 오히려 내게는 강함이다. 고난이 내게는 자랑이다. 시련이 오히려 내게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도 바울처럼 감사하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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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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