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30m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히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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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30m
히 11:7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명예의 전당인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세 번째 주자는 노아가 주인공입니다. 노아는 에녹의 증손자입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고, 라멕이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는 죽음을 맛보지 못한 에녹의 증손자요, 인류 최고 장수한 사람인 므두셀라의 손자입니다.
우리가 노아를 기억하는 것은 노아의 홍수 때문입니다. 노아 홍수는 노아 나이 600세 되던 해에 하나님의 심판의 홍수가 임했습니다. 노아가 태어날 때 그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369세였습니다. 홍수가 이 땅에 임했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969세입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 입니다. 므두셀라는 에녹의 아들인데, 그 이름을 에녹이 지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작명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계시적 의미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969년 전에 므두셀라에게 계시하신 그대로 실제로 그가 죽자 그 해에, 노아 나이 600세 되던 그 해에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노아얘기가 나오는 창세기 6장 8절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노아만큼은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노아뿐 아니라 그의 가족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어떻게 해서 자신과 자신의 집을 구원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노아는 패역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가락에 춤 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악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노아 시대의 죄악상, 타락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 6장 6절 이하입니다.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오죽하면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며 후회하셨을까요? 오죽하면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람에게 맡겼던 생명들까지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을까요? 노아는 이렇게 타락이 하늘을 찌를 때 살았으나 거기에 편승하지 않고 오직 증조할아버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명예의 전당인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흑암의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별종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왜곡되고 전도된 암흑 천지를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인으로 산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노아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고되며 비웃음을 샀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고집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점을 높이 평가하시고 남다른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합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이것이 삶의 철학입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신념이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리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해서는 안 될 일은 자제해야 사람입니다. 현란한 세상문화를 따라가고, 끊임없이 손짓하는 세상에 자기 몸을 던지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따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고루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게 믿음의 길입니다. 최근 한국 갤럽조사에 의하면 10년 전에 비해 교인이 10%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갈수록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보다는 세상과 동행하는 삶에 나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것이 우리의 세태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한 에녹도, 그의 증손자인 노아도 세상문화가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남다른 구원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꼭 그 사실을 기억합시다. 실수로 노아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게 아닙니다.
노아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편으로는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면서 심판을 예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의 방편인 방주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창세기 6장 14절 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노아가 하나님의 이런 심정을 헤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방주를 열심히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입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는 진심으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증거하므로 이웃과 함께 구원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방주를 만들고 또 열심히 사람들에게 심판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치 롯이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여기서 피하자고 했을 때, 사위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처럼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심판을 경멸하며 노아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7절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우리는 이 시대 마지막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아처럼 방주를 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지 하나님이 명하신 구원의 방편인 방주를 건조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필생의 사업이요,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아무리 외롭고 쓸쓸하고 고되고 힘들어도 우리는 반드시 이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함께 구원을 받자고 이웃에게 외쳐야 옳습니다. 노아는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메아리도 없었지만, 120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좌절하고 낙심이 컸을까요. 한 사람도 안 돌아오니까 말입니다. 단 한 사람도 자기 말에 동조하고 나서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참으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절대 작은 배가 아니었습니다. 유조선 모양의 배였습니다. 그러니 혼자서 120년에 걸쳐 건조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더구나 강가나 바닷가가 아니라 산에서 만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웃기는 코미디입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절대 주일을 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성도들을 보면서 지금도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그 하나님의 명령에 끝까지 120년을 하루 같이 성실했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러분, 노아의 이러한 헌신적 삶이 오늘 마지막을 사는 성도들의 진정한 삶의 자세여야 합니다. 노아처럼 살아야 합니다. 노아처럼 주님 뜻에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도전을 노아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황당하고 산에서 배를 만드는 일이라 해도 하나님이 명하신 일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게 맞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20년 동안 큰 배를 건조하는 일에 매달려 살았으니 그 희생이 얼마나 컸으며, 거기에 바친 시간과 물질과 정열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럼에도 노아는 그 모든 명령을 준행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합니다. 노아는 우리의 롤모델입니다. 주님은 서머나교회에 대해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당시 서머나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섭섭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서머나교회는 초대교회 가운데 가장 작고 고난을 겪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서머나교회에 이제 너는 고생 길에서 열외다고 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작고 가난하고 상처투성이라고 핑계 대지 맙시다. 나를 열외시켜 달라고 하지 맙시다. 홀로 120년간이나 묵묵히 방주를 만들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얻은 노아를 본받읍시다. 노아가 산에서 방주를 지으며 얼마나 회의에 시달렸을까요? 그런데 그는 끝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온 가족을 구했습니다. 부디 힘든 중에도, 열악한 중에도 끝까지 헌신을 다 하는 성도가 되어 서머나교회처럼, 노아처럼 온 가족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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