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딸 예루살렘이여!(애 2:8-17)

딸 예루살렘이여!

애 2:8-17


하나님이 유다를 축복하사 그들에게 선지자들과 율법 교사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9절). 백성들은 더 이상 율법을 가까이하지 않고, 서기관들은 율법을 가르치지 않고, 율법을 새긴 돌판은 법궤와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걸 제대로 보지도, 선용하지도 않는 자들에게 성경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멸시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이제 그들에게는 선지자도 묵시도 없을 것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내 눈이 상하며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11절).

예레미야는 이런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고, 눈물에 눈이 상하도록 울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제대로 다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미 그런 재난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당한 변은 아니건만 그래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온몸이 녹아내릴 듯 했고, 내장이 다 풀어져 버릴 듯 했습니다(시 22:14). 여기 <창자>와 <간>이란 말은 견딜 수 없는 감정적 혼란이나 슬픔을 상징합니다. 성경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옛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되기 때문입니다(고전 10:6, 11). 고난 중에 드린 예레미야의 기도를 배웁시다. 눈이 상하도록, 창자가 끊어지고 간이 땅에 쏟아지도록 애끓는 심정으로 기도한 예레미야의 자세를 본받읍시다. 


원수들이 비웃으며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16절).

예레미야가 더욱 가슴 아파한 것은 원수들의 비웃음과 의기양양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이 일은 우리가 한 것이고 우리의 위대한 업적이다. 예루살렘은 이제 우리의 것이다>며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음부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이기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원수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안하무인인 원수들의 만행 조차도 다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음을 잊지 마시고 필요 이상으로, 사실 이상으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대적자들의 비웃음과 즐거워하는 모습에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그 모든 처분을 맡기십시오. 다만 예레미야처럼 눈물로 기도하셔서 원수의 비웃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으십시오. 오직 그것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