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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노하시는 날(애 1:11-22)

그의 진노하시는 날

애 1:11-22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12절).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 심판의 날, 응징의 날은 곧 고통의 날이요 괴로움의 날입니다. 높은 곳에서 내 골수에 불을 보내시고 나를 물로 치시는 날이며 나를 피곤하게, 황폐하게 하시는 날입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진노의 날을 자초하여 결국 그렇게 패망했으며 그 모습을 지켜 본 예레미야 선지자는 견딜 수 없는 아픔과 비애감에 절절한 슬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청년들을 부르심

<주께서 내 영토 안 나의 모든 용사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청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딸 유다를 내 주께서 술틀에 밟으셨도다>(15절).

이것은 유다의 용사들을 다 버리셨을 뿐 아니라 마지막 남은 어린 소년들까지도 모두 진멸하셨다는 의미로 이는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청년들이 사라진 나라와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고 내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도 청년들을 치시고 부수시는 심판이야 말로 가장 혹독한 응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 교회의 최대 위기도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 교인수 감소에 비해 4배나 많은 수의 청년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런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 우리 한국 교회는 교회학교가 대단히 융성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크게 부흥했고 언제나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청년들이 급속히 교회를 떠나는 현실은 곧 교회의 위기와 재앙을 의미합니다. 과거 유다에도 청년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에 예레미야의 절망감이 더욱 컸던 것입니다. 


처녀들이 사로잡혀 감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18절).

성경은 갈대아인들이 청년 남녀를 불문하고 여자나 어린 자녀들까지도 전혀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대하 36:17). 전쟁은 잔혹하고, 적군은 무자비합니다. 불과 7,80여년 전 일제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이 땅의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잡아다 유린했는데, 지금으로부터 2천 6백 년 전의 전쟁이었겠습니까? 위안부 출신의 우리나라 여성들은 해방된 이후에도 피눈물 나는 한을 씹어야 했습니다. 일본이 아직까지도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하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수많은 고비 고비마다 전쟁과 폭력에 짓밟힌 이름 없는 여인들의 모습이 우리의 아픈 식민지 역사인 일본군 위안부와 또 아득한 옛날 바벨론이 유다의 처녀들을 잡아가고 유린한 역사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해치거나 겁탈하는 도발을 자행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도 하루 속히 그 반인륜적인 자신들의 전쟁 범죄를 깊이 시인하고 배상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22절). 예레미야처럼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