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1n 원수 사랑(마 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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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n
마 5:38-48
원수 사랑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44절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원수 사랑은 확실히 기독교 정신의 최고봉입니다. 모든 기독교 윤리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에 대한 논란은 오늘날까지 계속됩니다. 이게 과연 현실 가능한가 때문입니다. 사실 세계사에서 기독교가 피를 많이 흘린 종교입니다. 그것은 원수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행동강령이나 실현가능한 규범이라기보다는 주님이 이상적 윤리로 제시했다고 봅니다. 어떤 이는 종말론적 윤리로서 중간윤리라고 합니다. 즉 일상 윤리가 아니라 특수 윤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규정하든 간에 주님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주요 원리를 제시하셨습니다.
은총의 원리입니다. 38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것은 잘못된 삶의 원칙이 아닙니다. 이게 바로 공의고 율법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율법적 원리나 원칙이 아닌 은총의 원리로 살아갈 것을 명령하셨고, 그렇게 살 때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은총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은총으로 대해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눈은 눈, 이는 이로 대하셨다면, 내가 과연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아무도 구원받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눈은 눈, 이는 이로 대하지 않고 아무 조건과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일방적으로 내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은총입니다. 이런 은혜의 원리를 깊이 깨닫고 그 원리로 살 때만 우리도 정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원수들이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약 우리에게 이는 이, 눈은 눈으로 갚으셨다면, 우리는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겁니다. 코란을 적용하는 이슬람 국가는 지금도 이는 이, 눈은 눈으로 갚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과연 우리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율법의 원리가 아니라 은총의 원리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 원리를 우리 삶에 적용하며 살면, 얼마든지 우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의 원리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 본능에는 철저히 배치됩니다. 원수는 갚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원수는 복수와 저주와 진멸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사는 사람은 원수 사랑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본능적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왼뺨도 돌려대며, 어떻게 속옷도 벗어주고, 어떻게 십 리를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자기 부인입니다. 본능으로 사는 사람은 자연인입니다. 우리는 본능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주님 말씀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자기 부인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본능이나 반사적으로 살지 맙시다. 자기를 부인하며 삽시다. 그래야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요청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의지의 원리에 따른 생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믿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원수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신 겁니다. 기독교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니 불교에서는 우리에겐 아예 원수가 없다고 합니다. 비현실적인 말 같습니다만, 어쨌든 주님은 이 세상에서 원수의 현실을 인정하십니다. 내 뺨을 치고, 내 속옷을 노리고, 강제로 십 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칫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살기 쉽게 합니다. 그래서 곧잘 흥분합니다. 원수 사랑은 절대 이러한 감정의 원리로는 불가능합니다. 의지의 원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통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원수 사랑이 가능합니다. 원수 사랑이란 주님의 명령이기에 내 감정과 정서에 거북해도 그걸 누르고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은총의 원리, 자기 부인의 원리, 의지의 원리로 사는 게 실제로 가능합니까? 우선 44절은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해야 내 삶의 스타일, 가치관이 변화됩니다. 기도 없이 나를 핍박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강력한 성령의 도움을 입습니다. 그 도움으로 원수 사랑이 가능합니다. 원수를 위해,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새깁시다.
그리고 45절 말씀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악인에게도 똑같이 해와 비를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에게 똑같이 해와 비를 주십니다.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보상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46절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원수를 사랑할 때 당하는 아픔, 희생, 손해는 하나님이 훗날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당한 불이익은 반드시 만 배로 갚아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기독교 윤리의 최고봉인 원수 사랑을 우리가 막연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며 살아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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