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1m 여호와 살롬(삿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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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m
삿 6:24
여호와 살롬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여호와 살롬은 여호와는 평화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주님이 평화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4장은 성령을 평화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평화를 도모하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다 평화이시기에 우리도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말 살롬이나, 헬라어 에이레네는 관념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관계적 개념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평화는 반드시 누구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놓치면 공허한 추상적인 개념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평화는 대체 누구와의 관계에서 평화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가장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관계가 망가집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아담의 위치를 물으신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물으신 겁니다. 하나님과 지금 화평한 관계냐를 물으신 겁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고, 숨었다고 했습니다. 둘 사이의 평화가 깨진 겁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불화의 관계로 전락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며 관계 개선을 촉구하신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하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아름답고 건강해 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화하면 그 사람은 끝까지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한가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의 문제가 자기와의 불화입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학하고 비관합니다. 자신에 대한 불평이 가득 차서 짜증과 회의, 초조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화해해야 합니다. 주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이웃 사랑 이전에 자기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잣대가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의 화평이 이웃과 평화의 전제요 모범입니다. 자신과 화해하십시오. 자신에 대해 좀 더 관대하십시오. 자신과의 평화를 하나님과의 평화 다음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언제까지 자신을 미워하며 스스로 자신을 소외하는 분열 가운데 사실 겁니까? 자신과의 화해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화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자신과 화해해야 그 다음에 이웃과의 평화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웃과 평화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게 실은 자신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자신과 화해하지 못했기에 남들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큰 숙제가 있습니다. 북한입니다. 우리는 남북이 한 형제요 자매인데, 지난 70년 동안 가인과 아벨처럼, 야곱과 에서처럼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6.25 65돌, 분단 70년간입니다. 이것을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평화의 민족입니다. 평화 없는 미래, 화해 없는 번영이 무슨 의미입니까? 저는 남북화해가 정치인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남북화해의 최대의 걸림돌일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의 경우처럼 교회가 앞장서서 남북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평화를 위해 부름 받은 평화의 사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은 본질상 죄의 종으로서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해한 하나님의 자녀만이 진정한 피스 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교회는 덩치는 크고 비축된 힘은 있는데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해 능동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회단체보다 능동적이어야 하는데 수동적입니다.
자연과 평화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하는 동안 자연과 적대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인간 성장의 환경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에덴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연과 천적 관계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유린해 왔습니다. 이제는 자연이 보복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영원히 함께 해야 할 공동 운명체입니다. 자연은 횡포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한 반려입니다. 로마서 8장의 말씀, 곧 자연이 구속의 아들들을 기다린다는 것은 화해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인간, 자연과 화평해야 할 피스 메이커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래서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자, 평화를 추구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가 갈 천국도 평화의 나라입니다. 이사야 11장 6절 이하는 평화의 왕국인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게 천국입니다.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염소 등은 다 천적 관계입니다. 천국은 어떤 갈등과 불화도 없는 완전한 평화의 세계입니다. 그 나라에 가려면 평화의 사도로 살아야 합니다. 평화의 복된 사도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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