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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20150524m성령강림주일</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삼상 16:13-16</p>
<!-- paragraph:p0003 -->
<p class="p1">성령 충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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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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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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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3절 하반절입니다.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다윗이 성령 충만했다는 뜻입니다. 14절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성령 충만했다는 다윗과는 달리 사울은 성령을 다 소멸했습니다. 성령이 떠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과 제2대 왕 다윗이 이렇게 대조적입니다. 한 사람은 성령 충만했고, 또 한 사람은 성령을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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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이때부터 두 사람의 운명은 갈립니다. 성령 충만했던 다윗은 그야말로 성군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소멸한 초대 왕 사울은 악령에 씌어 날뛰다가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거기서 세 아들을 잃고, 본인도 중상을 입어 결국 칼로 자결합니다. 성령 충만의 복과 성령소멸의 불행이 보여준 극명한 사례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을 보면, 술 취하는 대신에 성령 충만하라고 말씀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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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충만 혹은 소멸은 다 양적인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맛보기로 임하고, 더 정진하여 신앙생활하면 머리끝까지 가득 찬다는 의미입니까? 성령이 물량적인 분입니까? 아니면 영력이 뛰어난 목사님이 불 받으라고 하면서 던져줄 때 덥석 물면 그때 비로소 충만해지는 게 성령 충만입니까?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인격적 하나님이신 성령을 비인격적으로 물건 취급하는 신성모독입니다. 사도행전 8<span class="s1">장</span>에 보면 사마리아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을 베푸니까, 돈 주고 사려고 하려다가 베드로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령은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안에도 성령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분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이고, 안 임하시면 안 계시는 것입니다. 대체 성령 충만은 무엇을 뜻할까요?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 내가 전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며 사는 삶입니다. 성령 강림 혹은 성령 세례 혹은 성령 내주와는 구분이 되는 개념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미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믿는 자들은 다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 심령 안에 성령이 이미 계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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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성령 충만하고, 어떤 이는 성령 충만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응답합니다. 자기 안에 계신 성령과 부단히 교감합니다.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대로 전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이 아무리 역사하고, 감동을 주더라도 전혀 전달이 안 됩니다. 이게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안에 계신 성령과 따로 노는 것입니다. 왜 성령 충만하지 못할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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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5 -->
<p class="p1">한 마디로 영성이 탁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령이 깨달음을 주셔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영성이 탁해질까요? 왜 내 영혼이 투명하지 못할까요? 소위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영이 아니라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어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는데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데 라이프 스타일은 세상 사람과 똑같습니다. 자기 개성, 입맛, 욕구대로 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신 성령과 교감이 안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을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 칭합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인 삶을 탐닉하기에 그 영성은 세상 때에 절어있습니다. 주님은 심령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자기 심령이 투명해야 거기에 하나님 모습이 비칩니다. 영성이 투명해야 성령의 역사에 예민하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성령과의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다니며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성령과의 교감이 전혀 없는 사람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불행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을 내 안에 모시고 살면서도 그 성령과의 교제가 없으니 성령은 성령대로 나는 나대로 사니까 그렇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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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령 충만한 사람은 실제 어떤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삽니까? 그들의 구체적인 물증이 무엇입니까? </p>
<!-- paragraph:p0018 -->
<p class="p1">우선 그들은 구원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누구도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아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확신합니다. 지금은 비록 어렵더라도 슬픈 표정 짓지 않습니다. 이것조차도 결국 내게 도움이 되게 할 것이라 믿고 감사합니다. 반면에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늘 헛갈립니다. 어떤 때는 성령에 속한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의에 시달립니다. 뭔가 아쉽고, 뭔가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자만이 누리는 성령의 은사요 복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십시오. 늘 구원의 확신 속에서 감사하며 사십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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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령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주님의 증인으로 삽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삽니다. 복음의 홍보대사로 삽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기의 직업, 능력, 달란트로 늘 주님을 증거하며 삽니다. 복음을 선전하고 자랑하며 삽니다. 사도들을 보십시오. 오순절 전에는 무서워 다락방에 숨어 지냈습니다. 오순절을 기해 그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니 세상이 달라진 것은 없는데 문을 박차고 나와 주님을 증거합니다. 이게 초대교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전도하면서 회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깊이 체험합니다. 전도하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전도는 절대 아무나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을 보면, 천하의 미련한 짓이 전도라고 합니다. 제 정신으로는 안 되고 성령이 강제하셔야 할 수 있는 게 전도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며 아직도 전도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도는 유별한 신앙인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성령 충만하면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자랑합니다. 전도를 자기 사명으로 숙명으로 알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전도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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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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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령 충만한 사람은 경건생활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은 에베소서 5장 19절의 말씀처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합니다. 사도행전 2장 46-47절입니다.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단면입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령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삶의 의미와 활력과 열정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매사에 진취적이고 낙관적이며 모험적이고 역동적입니다. 성령 충만하셔서 여러분의 삶과 신앙생활이 늘 생기와 활력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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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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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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