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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50517m 죄와 은혜의 대물림(출 2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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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50517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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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출 20: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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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죄와 은혜의 대물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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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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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속담 가운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유전현상을 잘 설명한 말입니다. 창조의 질서와 법칙인 유전현상 때문에 콩 심은 데 콩이 납니다. 유전이 무엇입니까? 조상이나 부모가 가진 신체적 특성이나 정서적 형질이 그 자식과 후손에게 대물림 되는 현상입니다. 유전이라는 한자는 남길 유(遺), 전할 전(傳)입니다. 유전현상을 6하 원칙에 따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 부모가, 누구에게? 자식에게, 무엇을? 정신적이거나 신체적 형질을, 어떻게? DNA에 담아서, 왜? 종을 지키고 번성하게 하려고입니다. 그래서 유전은 창조의 법칙입니다. 유전이 없으면 종이 사라집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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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창세기 1장 21절 이하입니다.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바다와 땅과 공중의 생물을 창조하시며 그들에게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유전질서를 부여하신 겁니다. 그래서 각 생물은 자신의 고유한 형질을 잃지 않고 대물림하여 종을 보존하고 번성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입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멸절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기 위해 유전 법칙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전 질서는 피조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생물학적 대물림은 태초에 하나님이 제정하여 부여하신 창조의 기본 질서이자 법칙입니다. 이 유전 법칙 때문에 생물이 번성하고 종의 보존이 가능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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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문제는 유전은 체형이나 신체적 요소뿐 아니라 정신적 형질도 있습니다. 인간성이나 도덕성 등도 유전됩니다. 그래서 유전이 무섭습니다. 우리가 다 부모를 닮았습니다. 외모뿐 아니라 그 정서도 닮았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모의 어떤 부분을 싫어하고 증오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시점에 가면 자기도 부모와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입니다. 심지어는 몹쓸 병도 유전됩니다. 문진표 작성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 가족력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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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더 무서운 유전 현상은 따로 있습니다. 생물학적이고 정신적 유전 외에 영적 유전이 있습니다. 원죄가 영적 유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담의 죄가 그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의지로 죄를 짓기 전에 이미 죄인입니다. 원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가 정당한 겁니다. 유아세례의 유용성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원죄를 쓰고 나옵니다. 선천적인 죄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기도 하지만, 죄를 쓰고 태어나기에 죄인입니다. 원죄와 자범죄는 이렇게 맞물려 있습니다. 세례가 무슨 뜻입니까? 죄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유아는 자기 의지로 죄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만, 죄를 쓰고 태어났기에 유아세례가 정당한 겁니다. 아무튼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선천적인 죄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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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본문 5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죄도 은혜도 저주도 축복도 당대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대물림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유전 질서입니다. 우리는 사실 이런 말씀을 보면 그저 막연히 성경에 나오는 언어라고 생각할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외모나 정신적, 정서적 유전은 인정하지만, 영적 유전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도 하고, 체감하지 못합니다.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부모나 윗대로부터 대물림 되는 죄와 저주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지금 겪는 대개의 불행이 다 대물림 된 겁니다. 복이나 행복도 마찬가집니다. 부모나 조상의 복이 대물림 되어 그 덕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눈물로 뿌린 축복의 씨앗이 유전되어 후손이 그 열매를 먹는 겁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기독교가 서민층을 통해 들어왔기에 박해도 많았고 순교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5대까지 되었습니다. 씨앗이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식 세대에 제대로 대물림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어쨌든 반드시 죄와 은혜는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모는 흔히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자식은 결코 이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행이 당대로 끝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된 자의 일방적인 바람일 뿐입니다. 현실은 부모의 그 불행, 가난, 아픔과 모진 운명이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됩니다. 유전법칙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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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죄와 저주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내 불행이 대물림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까? 노아의 둘째 아들은 함입니다. 함과 그 자손인 가나안 족속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잠에 빠졌을 때, 첫째와 셋째는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안 보려고 뒷걸음질해 들어가 이불을 덮어줬는데, 함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가 아버지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함의 자손인 가나안 족속들에게 저주가 선포됩니다. 나중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저주에서 열외된 사람입니다. 여리고 성의 창녀 라합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숨겨준 이스라엘의 정탐꾼 한 명과 결혼해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고, 그 계보에서 예수님이 태어납니다. 저주가 아니라 놀라운 복의 대물림입니다. 그러면 라합은 어째서 그 저주의 사슬을 끊고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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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렇습니다. 그 비결은 믿음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만이 저주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라합은 저주 받은 가나안 족속이요 창녀였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기의 죄를 씻으면, 주님을 믿음으로써 속죄함을 입으면 저주에서 놓임을 받습니다. 저주의 유전질서로부터 해방됩니다. 우리도 전에는 온갖 더러운 귀신과 저주와 재앙이 우리 가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함부로 이사도 결혼도 길을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이든 귀신이 허락해야, 날을 받아야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손 없는 날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새 차를 사도 고사를 지내야 안도하며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귀신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점쟁이 찾아가 날 받으십니까? 우리는 믿음 안에서 놓여났습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원죄에서 놓여났습니다. 원죄는 지독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은 더 지독합니다. 저주가 다 사라졌습니다. 더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저주를 대물림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운명과 가계를 저주로부터 잘 지켜야 합니다. 두 번 다시 마귀가 우리 가정을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을 우리 자녀들에게 잘 전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요 책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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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마태복음 12장 43절 이하입니다.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분명 주님의 권세로 귀신이 그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운명과 가계가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쫓겨난 귀신이 제 살던 집에 와보니, 잘 청소된 채로 비어있습니다. 우리가 늘 실패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분명 내 안에 있던 마귀를 몰아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귀에게 농락당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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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리스도의 보혈로 청소되어 있는 빈 집으로 둘 게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계시면 절대 귀신이 다시 들어오지 못합니다. 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성령이 무서워서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성령 충만을 강조하는 것도 더는 내 속에 귀신이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더는 마귀에게 농락당하지 않습니다. 저주의 악순환을 끊어냈다가 전부가 아닙니다. 잘 관리해야 합니다. 빈 집으로 방치하지 않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새로워졌음에도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은 빈 집으로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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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보십시오.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쫓아냈던 귀신이 다시 돌아와 그 사람을 다시 장악하는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조상의 망령된 행실과 저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시고, 자손이 천대 만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무당이나 점쟁이 찾아가지 마시고, 주님을 믿으시고,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시고, 소제되고 수리된 집을 빈 집으로 방치하지 마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이것이 저주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비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가 천대까지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고 살기를 빕니다. </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br></p>
<!-- paragraph:p002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J2p066Plr8"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