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6w 신명기 강해 73(신 34:1-12) 마지막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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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6w 신명기 강해 73
신 34:1-12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신명기 마지막 장인 34장입니다. 지난주에는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한 최후 기도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모세의 죽음 장입니다. 우리는 신명기 저자를 모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신명기에 모세의 죽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신명기를 기록했다면 어떻게 자신의 죽음까지 기록했을까요? 그러므로 34장은 모세의 기록이라기보다 누군가 보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명기 34장에 모세의 죽음이 나온다고 해서 신명기의 모세 저자설을 부인하기도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32장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미 느보산에 올라 요단강 건너 가나안을 둘러보고 거기서 죽을 것이라 하십니다. 모세는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하나님이 분부하신대로 느보산에 올라 마침내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까지 다다랐습니다. 가나안 땅이 한 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느보산은 지금의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30km 떨어진 해발 710m 산입니다. 비스가산은 느보산과 같은 산이라 말하는 학자도 있고, 느보산의 북서쪽, 즉 여리고 맞은 편 산을 구분해서 비스가산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신명기 34장에서는 느보산과 비스가산이 구분됩니다. 비스가산 정상에 오르면 강 건너 가나안 땅이 한눈에 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록 가나안에 들어갈 수는 없더라도 마지막으로 가나안 온 땅이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산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죽음 앞에서 모세는 얼마나 아쉬움이 컸겠습니까? 가나안 문턱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못하니 말입니다. 비스가산에 올랐을 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입니다. 모세의 생애는 40년씩 끊어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40년은 애굽 공주의 양아들로 자랍니다. 이후 40년간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 치며 생활합니다. 이후 40년은 이스라엘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문턱까지 인도한 기간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120세가 되었음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7절). 이렇게 보면 모세의 최후는 불행했다기보다는 복 되고 깨끗했습니다. 120세면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다 죽기 십상인데 모세는 120세 나이로 해발 700미터가 넘는 산 정상까지 등반합니다. 장수만이 능사가 아니고 모세처럼 120세를 살아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기에 우리가 모세를 부러워합니다. 모세가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해서 그랬을까요? 광야생활하며 그렇게 건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모세처럼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빕니다.
모세의 죽음은 하나님의 큰 종답게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5-6절입니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를 장사한 후 30일간 애곡하며 애도합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40년간 시시때때로 반역을 일삼았으나 모세야말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위대한 종임을 인정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문턱에서 들어가지 못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도 마음 아파한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모세 이후에는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종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모세를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평가했습니다. 왜 그렇게 그들이 모세를 높이 평가했습니까? 모세는 다른 선지자나 다른 하나님의 종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대면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적나라하게 대면했던 유일한 종, 모세. 출애굽기 33장 11절에도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습니다. 왜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을까요? 우리는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도 대면하지 못합니다. 1시간 대면하면 눈이 멀거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빛 그 자체이십니다. 0.1초도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을 보면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합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대면하면 살아날 사람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을 만난 자가 나옵니다. 야곱 같은 사람말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아하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라고 하면서 그 곳을 벧엘이라 명명합니다. 얍복강가에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겁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합니다. 모세가 40일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모세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겁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죽지 않은 경우는 모세가 유일합니다. 그러니 모세 이후에도 모세와 같은 위대한 종이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가장 위대한 종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땅에 살면서 가장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 사람입니다. 11-12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그래서 모세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없습니다. 애굽에서도 10가지 기적을 행합니다. 출애굽한 이후에도 홍해를 가릅니다. 가지고 나온 식량이 떨어져 백성이 아우성치자 만나를 내립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메추라기를 줍니다. 목마르다고 하니 샘물을 냅니다. 이스라엘은 40년간 모세의 기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종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명기의 평가입니다.
모세의 품성을 알려주는 말씀인데, 이것은 민수기 12장 3절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 온유함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심성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물론 모세도 성질을 부립니다. 그것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그 누구보다 정서가 온유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팽개치지 않고 이끈 것입니다. 툭 하면 봉기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대드는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한 것은 그의 온유함 때문입니다. 온유한 모세, 이것이 성경이 모세의 정서를 평가한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의 8복을 보면,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나안 문턱에서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땅을 기업으로 받았을 겁니다. 왜 모세가 땅을 못 받았을까요? 모세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율법은 안 된다는 겁니다. 가장 온유했던 모세를 희생하면서 하나님은 율법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자기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율법으로 우리를 복음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사명을 잘 감당한 겁니다.
이것으로 2년간 해온 신명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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