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6m 포도주가 떨어지다(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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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m
요 2:1-11
포도주가 떨어지다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갈릴리 가나의 어느 혼인집에서 발생한 얘깁니다. 잔치가 한창인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의 잔치문화는 여러 날 계속되고, 부자는 2주간이나 했다고 합니다. 이 집의 경우는 어느 시점에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직 잔치가 한창인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요즘은 우리나라도 웨딩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만, 전에는 자기 집 마당에서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소 잡고 돼지 잡아 온 동네 사람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며 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잔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막걸리가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혼주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런 망신살이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혼인집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죽을 맛이었을까요?
여러분, 저는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가 이런 형국에 처한 것 같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먼데 벌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부지런히 앞으로 더 나가야 하는데, 동력이 완전히 소진되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와 사회입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처럼 점점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한 때는 그 열기가 충천했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싸늘히 식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남의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 모습이 그렇다는 겁니다. 포도주가 바닥이 났습니다. 포도주 떨어진 가나의 혼인집 같습니다.
다행히도 주님이 그 혼인집에서 당신의 공생애 첫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제자들이 그 현장을 목격했기에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바쳤습니다. 포도주 떨어진 그 난감한 현실을 주님이 기적을 허락하사 극복케 하신 겁니다. 파국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더 풍성하고 흥겹고 더 성공적인 혼인 잔치로 마무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이 물을 양질의 포도주로 변화시켰습니까? 3절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주님의 모친 마리아가 주방에서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이것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주님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길이 없다고 직감한 겁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곧장 주님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주방 쪽에서 일하다가 포도주 떨어진 사실을 알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주님께 달려와 사실을 알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방법이 아니라 주님께 말하면 해결책이 나온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주님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충격적입니다. 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는 원어로 <구나이>입니다. 구나이는 여자를 비하하는 호칭이 아닙니다. 부인, 여사라는 뜻입니다. 남의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쓸 때는 높이는 호칭이지만, 그럼에도 자기 모친에게 붙일 수 있는 호칭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말 번역은 그 포도주 떨어진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식이지만, 원어상으로 보면, ‘여자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포도주 떨어진 일을 갖고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섭섭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안하게 만드는 발언입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도 마찬가집니다. 헬라말로 <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시간, 예를 들면 봄여름가을겨울, 생로병사를 일컫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주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때>는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결정적 시간, 중요한 시간, 기회라는 의미입니다. 희랍신화에 기회의 신의 이름이 카이로스입니다. 주님은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일거수일투족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분입니다. 아직 내가 나서서 이런 기적을 베풀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적의 기회가 아직 아닙니다 라는 뜻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어머니 마리아의 말을 듣고 주님이 이렇게 박절하게 거부하셨습니다. 구나이라는 말을 써가며 모욕적으로 거부하신 겁니다. 나의 카이로스가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면 내가 일선에 나서서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며 물리친 겁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의 그런 태도에 대한 마리아의 처신입니다. 전혀 실망하거나 무안해 하거나 달아나서 숨지 않고 처음 가지고 왔던 주님에 대한 기대, 신뢰를 그대로 관철합니다. 우리 같으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겁니다. 우리 같으면 무안하고 민망해서 쥐구멍을 찾았을 겁니다. 기대를 가지고 부탁을 했는데, 보란 듯이 기적을 베푼 게 아니라 구나이, 카이로스 운운하며 물리쳤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답습니다. 사실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당신의 공생애 첫 기적은 당신이 원해서 했다기보다는 원치 않았으나 모친 마리아가 전혀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아서 결국 주님이 그 마리아의 믿음에 백기를 든 결과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이 강요한 기적이 주님이 행한 공생애 첫 기적입니다. 분명 주님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믿음이 워낙 강경해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아서 주님이 결국 백기를 든 겁니다. 이게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주님이 베푼 기적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이래서 무섭습니다. 주님도 우리 믿음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고 무안하게 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낙심해서 포기합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주님이 승복하고 본의 아니게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위기를 가장 행복한 상태로 반전시켰습니다. 주님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믿음을 발동하는 것, 믿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거절해도 저는 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고 하면 주님이 항복하십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길 사람이 있을까요? 야곱은 이겼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이라며 달려들었습니다. 주님이 내려치니 뼈가 나갔습니다. 그래도 놔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국호인데,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언제든 우리에게 항복하실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씨름하면 우리에게 져주실 용의가 있으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고집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호의적이지 않은 표정만 지어도 지레 포기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포기할 태세가 되어 있고, 주님은 언제나 져주실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주님이 그렇게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혔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하인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5절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절대 주님이 자기를 내치지 않고 반드시 자기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마리아는 확신합니다. 못 들어주겠다는데도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하인들에게 분부합니다. 돌 항아리 여섯에 아귀까지 가득 채우라고 합니다. 당시 하인들은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회의스러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주님이 이제는 떠서 갖다 주라고 합니다. 하인들이 다시 그 물을 떠서 잔치상으로 갑니다. 어느 시점에 맹물이 포도주로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하객들이 하인들이 떠온 맹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깜짝 놀랍니다. 오죽하면 신랑을 부릅니다. 보통은 처음에는 양질의 포도주를 내다가 취하면 질 낮은 포도주를 내는데 어떻게 더 좋은 포도주를 나중에 내느냐고 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최악의 잔치집이 되었을 가나의 혼인잔치집에 주님이 개입하여 가장 극적인 혼인잔치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사회, 한국 교회, 우리 교회에도 주님의 이런 기적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개입 없이 지금의 고갈된 국면을 전환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리아처럼 주님께 우리의 절박한 사정을 알려야 합니다. 다른 인간적 방법을 찾기보다는 주님께 우리 형편을 알려야 합니다. 주님이 구나이라고 하며 모욕하고, 카이로스를 거론하며 거절해도, 마리아처럼 불굴의 믿음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절대 함부로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먼저 시험을 한 후에 우리가 기적을 감당할 그릇이 되었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은혜를 베풉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적이 도리어 우리에게 화와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그 가혹한 시험을 통과했기에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다음은 순종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기적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너희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어도 주님이 무조건 물을 채우라고 하면 채워야 합니다. 이제 떠서 갖다 주라고 하면 그게 아직 맹물이지만 갖다 줘야 합니다.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포도주가 동이 난 집이었는데 졸지에 여섯 항아리 가득 넘치게 포도주가 있는 가장 멋진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도 끝까지 믿음으로 관철해서 기어이 주님을 항복하게 합시다. 순종합시다. 순종을 결단합시다. 기억하십시오.
가나의 혼인집 기적은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순종이 빚어낸 위대한 합작품입니다. 우리 교회도 여섯 항아리 가득 양질의 포도주가 넘치는 교회, 기쁨과 감사가 새로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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