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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50405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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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고전 15:5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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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활의 첫 열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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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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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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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고린도전서 15장은 바울의 부활에 관한 논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왜 부활의 첫 열매시죠? 부활이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겁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주님 외에도 많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주님보다 하루 더 무덤에 있은 주님의 친구 나사로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부활이 아니라고 합니다. 소생, 회생이라고 합니다. 부활은 이것입니다. 51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비밀은 부활의 비밀입니다. 마지막 나팔은 이 세상 종말을 알리는 천사들의 나팔소리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울리는 나팔소리입니다. 그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순간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변화가 부활입니다. 어떻게 변화된다구요? 홀연히 변화됩니다. 이어지는 52절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가 살다 죽으면 이 육신이 썩습니다. 흙으로 환원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가 부활하면 그때는 더는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신비한 몸(부활체)으로 변화됩니다. 53절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더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비한 몸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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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여러분, 죽은 자만 부활합니까? 산 자도 부활합니까? 산 자에게 부활이 적용될 수 있습니까? 죽은 자만이 아니라 산 자도 부활합니다. 53절 말씀은 죽은 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52절을 다시 보십시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세상 종말이 올 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죽은 자들은 죽은 상태에서 살아나며 신비한 부활체로 변화되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세상 종말을 맞는 사람들도 홀연히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나사로, 야이로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부활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나서 얼마를 더 살았는지는 모르나 다시 죽었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한 사람은 더는 석지 않습니다. 주님만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주님은 죽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신비한 부활체로 계시다가 영만 천국으로 가신 게 아니라 부활체로 가셨습니다. 지금도 영으로 계시는 게 아니라 부활체로 계십니다. 제자들이 문을 닫은 방에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는 게 부활체입니다. 이 땅에 계시다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국에 가는 게 부활체입니다. 그런 몸으로 변화되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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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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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활의 핵심이 왜 변화일까요? 부활한 후에는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육신은 소모품입니다. 이 육신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변화가 필수입니다. 53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원어에는 ‘반드시’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반드시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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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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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활체는 어떤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13장 35절 이하에서 바울은 꽃씨와 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꽃씨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작고 초라합니다. 그걸 땅에 심으면 꽃씨는 꽃이 됩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변합니다. 우리의 부활 전후의 모습이 그렇게 변합니다. 그렇게 완벽하고 완전하게 변합니다. 징그러운 배추벌레가 노랑나비가 됩니다. 배추벌레와 노랑나비를 비교해 보십시오. 굼벵이와 매미를 비교해 보십시오.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옵니다.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가 훗날 그렇게 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 이하입니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꽃씨처럼 볼품없는 우리의 육의 몸이 꽃 같은 신령한 몸으로 피어나는 게 부활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때는 더는 장애인도 없습니다. 그때는 다이어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세상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전쟁터에 나가 팔다리를 잃은 사람도, 화장을 한 사람도 다 온전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합니다. 중세 때는 부활 때문에 교회법으로 화장을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걸작으로 부활하게 하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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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 병든 마음, 뒤틀린 가치관도 다 변화됩니다. 인간관계도 가족관계도 다 변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관계로 재편됩니다. 물론 의식의 연속성은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부모, 내 첫 사랑이었다는 걸 다 압니다. 하지만 그때는 더는 지금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두 한 형제자매가 됩니다. 어떤 분은 부활 후에도 지금의 남편, 아내면 차라리 부활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겠다고 합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걱정이나 고민은 하지 마십시오. 가장 아름답고 신령한 생각으로 변화되기에 누구도 더는 무섭지 않습니다. 주님은 부활 때 장가 시집 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관계 체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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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주님이 며칠 만에 부활하셨습니까? 금요일에 못 박혀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사흘입니다. 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까? 이틀이나 나흘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왜 사흘인지를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이것도 필연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온 인류의 죗값을 다 사하기 위해서는 사흘이 필요했습니다. 사흘간 무덤에 계시고 지옥에 계심으로써 죗값을 갚으셨습니다. 이틀을 계시기엔 우리 죗값이 너무 비쌌고, 나흘을 계시기엔 주님의 몸값이 비쌌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 주님이 우리 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셨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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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9 -->
<p class="p1">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과수원을 하시는 분은 나무를 심어놓고 첫 열매를 학수고대합니다. 첫 열매가 달린 후 계속 열매가 달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시대를 개막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담보요 보증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대로를 트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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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부활의 산 소망을 가슴 가득 품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사시길 기원합니다. </p>
<!-- paragraph:p0022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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