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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2m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 19:25-27)

20150322m

요 19:25-27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주님이 당신 모친을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입니까? 누구길래 다른 제자는 다 도망갔는데, 최후까지 주님 곁을 지키다가 주님 모친을 모시게 됩니까? 최후만찬 장면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1-25절입니다.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3절을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최후만찬석상에서는 아예 주님 품에 누웠다고 합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마저도 그를 통해 누가 주를 팔려고 하느냐며 주님께 묻습니다. 


늘 이렇게 주님 가까이에 있었고, 주님의 최후도 홀로 지켰던 제자, 자기 이름 대신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익명의 호칭을 쓰는 사람은 사도 요한입니다. 전에는 자호를 많이 썼습니다. 백범, 월남, 도산, 춘원 등입니다. 자기 이름은 부모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나 자호는 자기가 짓는 것이기에 자기 의지, 가치관, 세계관, 신념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사도 요한이 붙인 자호입니다. 요한복음에도 요한이란 이름은 안 나오고 자호만 여덟 번 정도 나옵니다. 이게 더 신앙고백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에게는 우리가 붙여준 호칭도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입니다. 왜 그가 사랑의 사도입니까? 사도 요한이 쓴 성경에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그의 말년은 에베소에서 목회합니다. 도미티안 황제 때문에 밧모섬으로 유배까지 다녀오고, 나이도 많이 들어서 노구를 이끌고 설교단에 서서 ‘소자들아 사랑하라’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요한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칼빈도 이름이 요한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장>이라고 하고, 스페인에서는 <후안>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반>이라고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 개 이름으로 <쫑>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이게 바로 요한을 가리킵니다. 어째서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을까요? 


먼저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자기를 부른 것은 간증입니다. 누구보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겁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도 베드로를 제치고 요한이 주님 품에 기대고 누운 겁니다. 요한은 남다른 주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한1서 4장 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9절도 보십시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가 먼저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그는 사랑의 사도가 된 겁니다. 


원래 요한은 사랑은커녕 오히려 호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주님이 제자들과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길을 막아서자, 요한은 당장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것들 다 태워버리자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에게 별명을 지어주는데, <보아너게>입니다. <우레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다혈질이고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을 듬뿍 받고 사랑의 사도로 거듭납니다. 


사랑은 먼저 받아야 합니다. 먼저 배워야 남을 가르칠 수 있듯이 사랑도 마찬가집니다. 사랑을 듬뿍 받아야 사랑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 많이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자녀를 많이 사랑해야, 자식도 나가서 사랑하며 삽니다. 요즘 갈수록 끔찍한 사건이 많이 일어납니다. 엄마가 아기를 내버리고, 아들이 아버지 등에 칼을 꽂고, 아내가 보험금을 노리고 둘씩이나 죽이고 딸마저 죽이려다 들켰습니다. 20대 딸이 자기 엄마를 죽인 후 불 지르고 자기는 놀이동산에 갔습니다. 다 사랑의 결핍에서 온 범죄들입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인간성이 비뚤어지고, 정서가 메마릅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적 흉기를 키우는 겁니다. 요한처럼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되십시오. 저 하늘의 달도 빛을 반사하기 위해서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사랑이신 주님의 빛을 듬뿍 받아야 우리가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요한처럼 사랑의 사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은 주님에 대한 사랑의 채무의식으로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주님이 잡히시자 제자들은 다 달아납니다. 그때 요한도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지금 주님 십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왜 돌아왔을까요? 그동안 주님께 입은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사랑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요한만 다시 돌아온 겁니다. 그래서 요한만 주님의 임종을 지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 예수 모친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도 있었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누구보다 죄 용서를 많이 받은 여인입니다.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주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임종을 지키고, 안식 후 첫날 주님 무덤 찾아갔다고 주님 뵙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겁니다. 주님께 입은 사랑이 너무도 커서 주님을 떠나지 못한 겁니다. 바울, 어거스틴, 프랜시스 모두 주님께 큰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도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며 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 성자, 성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주님께 졌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렸습니다. 우리도 한 시도 주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주님 사랑을 갚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도 그런 자세로 살았기에 위대한 사랑의 사도가 된 겁니다.


요한은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자기도 열심히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친 마리아를 부탁한 그때부터 평생 마리아를 제 어머니로 생각하며 모셨습니다. 팔레스틴을 떠나 소아시아 에베소에 가서 목회할 때도 마리아를 거기로 모시고 갔습니다. 지금도 에베소에는 마리아를 기념하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요한이 마리아를 끝까지 모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리아는 주님이 사랑하신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을 나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그게 어찌 진정한 사랑일까요? 주님은 사랑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 정서로는 용납이 안 되지만 그래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니 저도 힘껏 사랑하겠다고 해야 맞는 겁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못난 사람, 가난한 사람, 세리, 창녀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만나셨고, 기도했고,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 얼마나 명쾌한 답입니까!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반드시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을 통해 확인하고 검증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보라 내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이 다 우리의 어머니요 형제자매입니다. 부디 주님이 용서하신 사람들을 우리도 용서합시다.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우리도 사랑합시다. 우리가 다 요한과 같은 이 시대의 사랑의 사도가 됩시다. 여러분이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제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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