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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구덩이에 갇힌 예레미야(렘 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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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구덩이에 갇힌 예레미야</p>
<!-- paragraph:p0002 -->
<p class="p1">렘 38:1-6</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고관들이 왕의 허락을 받아 예레미야를 죽이기 위해 감옥 뜰에 있는 깊은 구덩이에 달아 내렸습니다. 그 &lt;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었으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gt;(6절)고 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것을 시인할 용기를 갖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관료들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5절). 왕이 고관들에게 예레미야의 운명이 &lt;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gt;고 한 것은 그가 예레미야에게 내릴 수 있는 최악의 선고였습니다.</p>
<!-- paragraph:p0005 -->
<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항복하면 목숨을 건지리라</p>
<!-- paragraph:p0007 -->
<p class="p1">&lt;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gt;(2절). </p>
<!-- paragraph:p0008 -->
<p class="p1">고관들이 예레미야를 그냥 옥에 가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더 깊은 지하 웅덩이에 던진 것은 예레미야가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고 여전히 &lt;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gt;(3절)고 여호와의 계시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lt;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목숨을 건지리라&gt;는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간단명료한 예레미야의 예언에 왕과 고관들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아무리 혹독한 말씀이라도 인내하며 거기에 복종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듣기 싫어 부인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구덩이에 던진다고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철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압살하려는 사악한 시도이며 자신을 기만하는 어리석은 작태일 뿐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면 적에게 항복을 해도 &lt;마치 노략물을 얻음 같이 그 목숨을 건진다&gt;고 했습니다. </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재난을 구하오니 죽이소서</p>
<!-- paragraph:p0011 -->
<p class="p1">&lt;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gt;(4절).</p>
<!-- paragraph:p0012 -->
<p class="p1">나라의 고관들이 왕에게 예레미야를 죽이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라면 백성들의 평안을 구해야 함에도 예레미야는 오히려 재난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입니다. 예레미야 만큼 예루살렘과 유다가 복되고 평안하기를 희구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레미야 만큼 예루살렘과 조국의 운명을 아파하며 많이 운 사람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그를 &lt;눈물의 선지자&gt;라고 했겠습니까? 그가 지금까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므로 죄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새출발을 시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회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며 징계와 심판을 경고한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데만 혈안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순간까지도 오직 바른 말만을 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lt;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더니 주께서 내게 가까이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gt;(애 3:55, 5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