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50315n 본이 되게 하려 하심(딤전 1:12-17)

20150315n

딤전 1:12-17

본이 되게 하려 하심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네로 황제 때인 주후 67년에 참수를 당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바울이 순교 직전에 쓴 서신입니다. 바울의 최후 서신입니다. 자신의 삶을 결산하며 쓴 인생고백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자기가 전에는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믿지 않음(불신)과 알지 못함(무지) 때문에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로 살았다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바울 인생의 분기점은 다메섹 도상의 회심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자신의 변화된 삶을 세 가지로 진술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통해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14절입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전에는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아서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로 살았는데, 이제는 주님을 뵙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도 다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더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생활이요 삶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바울의 삶이 없기에 믿음의 사람이란 사실을 당당히 고백하기 민망합니다. 바울은 과장이 아니라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확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믿음이 언제나 풍성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평소에 무엇을 전도하였을 것 같습니까? 바울은 본래 말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글로 전도했겠습니까? 바울은 원래 글은 잘 썼습니다. 자기는 말에는 능하지 못하나 글에는 남 못지않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바울이 편지를 썼다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말로나 글로서 전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믿음의 삶, 믿음의 인격으로 전도했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간질을 앓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키도 크지 않았습니다. 허리도 굽었다고 합니다. 외모도 멋지지 않았습니다. 40에 감한 매를 여러 번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목 베임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처절한 자신의 생애를 통해 믿음의 삶을 살았고, 전도했습니다. 고난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참 신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말세에 의인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말세에는 입으로만 믿는 자들만 있지 생활로 믿는 사람이 드물 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삶에 믿음이 넘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처럼 부끄러움 없이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몸, 삶으로, 고난을 당하며 믿을 때 우리 삶을 통해 주님이 증거됩니다. 바울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은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14절을 보면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원래 바울은 증오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살해할 때도 앞장서서 돌로 살해했습니다. 다메섹으로 숨어 든 그리스도인을 색출하러 갔습니다. 바울은 원래 유대교의 저격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랑의 화신인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사랑은커녕 미움과 질투, 증오로 가득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이러한 사랑이 넘치도록 풍성하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된 직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유대교 전사였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된 직분자가 되었습니다. 12절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은 기본이자 출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속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직분까지 맡기십니다. 저는 아직도 내게 직분을 맡겨서 감사하다고 하는 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 다들 부담스러워 합니다. 바울은 직분을 맡겨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바울 같은 소명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직분자로서의 자부심이나 긍지가 없습니다. 부담만 될 뿐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직분자로서 맥 놓고 쉰 적이 있습니까? 그가 일하면서 공치사한 적이 있습니까? 일 많다고 불평한 적이 있습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직분을 맡기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바울처럼 헌신하는 충성된 직분자가 됩시다.


이제 바울은 결론을 내립니다. 왜 자기 같은 비방자요 폭행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셔서 믿음과 사랑의 사람, 충성된 직분자가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말합니다. 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나 같은 사람도 주님이 이렇게 구원하고 직분자로 삼으셨다면, 이 세상에서 주님이 직분자로 세우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다 주님이 직분자로 세우실 수 있음을 깨닫게 하려고 주님이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는 겁니다. 바울의 학식이나 가문이 좋아서 직분자로 삼았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자꾸만 바울은 자신이 비방자요 폭행자요 죄인 중의 괴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불러 당신의 직분자로 삼으셨다는 겁니다. 자기보다 늦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본을 삼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자신을 직분자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17절입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의 생활을 보면, 한 번도 구원의 감격이나 소명에 대한 열정, 감사가 식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했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비천한 자신을 택해서 당신의 사역에 쓰시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과 소명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사십시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을 들으며 나의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로 하여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신 것은 아무튼 나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 위해서 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평생을 그런 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의 성호를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과 진술이 그대로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과 간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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