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46785",
  "title": "20150308n 택한 그릇(행 9:15-19)",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15-03-08T20:53:56",
    "original_updated_at": "2015-03-08T20:53:56",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 class="p1">20150308n</p>
<!-- paragraph:p0002 -->
<p class="p1">행 9:15-19</p>
<!-- paragraph:p0003 -->
<p class="p1">택한 그릇</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사도행전 9장은 바울 사도의 회심장입니다. 천하의 바울, 안하무인의 유대교 전사였던 바울이 다메섹에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처단하려고 가던 도중에 극적으로 주님을 만납니다. 9장 1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이 사건으로 눈도 멀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10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에게 직가에 있는 사울을 찾아가 안수하고 보살펴 주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때 아나니아가 주님께 묻습니다. 9장 13절 이하입니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그때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15절 이하입니다.</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두려워하지 말고 가라! 사울이란 인물이 네가 말하는 그런 인물이 맞지만 가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수용하실 수 있습니까? 아나니아는 주님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어 항의했습니다. </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사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울은 주님을 가장 호전적으로 대적했던 사람입니다. 기독교 박해의 선봉장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저격수였습니다. 스데반을 살해할 때도 주모자였습니다. 바울이 후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 천인공노할 사람에 대해 주님은 &lt;나의 택한 그릇&gt;이라고 하십니다. 백 번 저주를 하고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를 저주는커녕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하십니다. </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여러분, 이 말씀은 장차 내 그릇으로 쓰기 위해 내가 이 자를 회심시켰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전에는 악했지만 지금은 회심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를 나의 그릇으로 택하겠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창세 전에 이미 당신의 그릇으로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토록 악하게 굴었던 유대교 전사였지만 내가 회개와 개종을 강제했노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잘 믿고 남달리 기도를 많이 했고, 누구보다 주님에 대해 희생하고 헌신했기에 주님이 그를 가상히 보사 당신의 위대한 그릇으로 선택한 게 아닙니다. 죄인 중 괴수였지만 그래도 내가 그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나니아 너는 더는 토 달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상 섬기다 회심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택함 받은 주님의 그릇들이었기에 하나님이 강제로 회심시키고 믿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그릇은 다양합니다. 우리는 다 달란트가 다른 그릇입니다. 주님의 그릇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용도와 모양이 다를 뿐입니다. 바울뿐 아니라 목사인 저뿐 아니라 남선교회 회원들도 여선교회 회원들도 실로암회 어른들도 다 주님의 택하신 다양한 그릇들입니다. 바울도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입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뻐서가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거나 똑똑해서도 아닙니다. 바울이 많이 배워서도 아닙니다. 이미 창세 전에 당신의 그릇으로 아들로 택해주셨기에 그렇게 못난 짓을 하며 살았음에도 다메섹 도상에서 불러주신 것입니다. 구약 예레미야 1장을 보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소명을 사양하면서 ‘저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선지자는 말로 선포해야 하는데, 말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이미 모태에서 짓기 전에 택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너는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남달리 경건해서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게 아닙니다. 이미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 전부터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택함 받은 하나님의 그릇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정체성입니다. 이 엄숙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망각하지 마십시오.</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이 당신의 필요에 따라 우리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 주님이 나를 부리고 쓰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대기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p>
<!--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그릇이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18절입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는 것은 눈에 씌었던 죄악의 꺼풀이 벗겨졌다는 것이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옛 사람은 수장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그릇입니다. 분명 그릇은 그릇입니다만, 우리 속에 너무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필요를 우리에게 담아야 하는데, 이미 잡다한 게 많이 담겨있어 주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내려놔야 합니다.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세상적인 것들을 쏟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당신의 필요한 것을 우리 안에 담으십니다. 비우고 내려놓읍시다. 우리는 주님의 택함을 받은 그릇이지 세상을 위한 그릇들이 아닙니다. 세상의 잡다한 것들을 다 내려놓읍시다. 지금은 너무 세속적인 것만 우리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정작 주님이 쓰시고 싶어도 못 쓰고 계십니다. 뭔가 신령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것을 담고 싶은데 빈 자리가 없습니다. 바울이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릇에 담긴 모든 추한 것을 깨끗이 비워냈듯이 그렇게 우리도 우리 자신을 비움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우리 안에 신령한 것들을 담을 수 있도록 합시다. 이것이 그릇인 우리의 도리입니다. </p>
<!-- paragraph:p0020 -->
<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하나 더 주님의 그릇이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릇인 우리는 언제든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코팅을 해야 합니다. 17절 하반절에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고 합니다. 주님의 그릇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 능력으로 일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쓰임 받는 그릇이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그릇으로 부름을 받는 순간부터 반 생을 오직 성령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p>
<!-- paragraph:p0022 -->
<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바울이 한 일을 보면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이룬 사역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신약이 27권인데 바울이 쓴 게 14권이나 됩니다. 그가 개척한 교회만 해도 확인된 곳만 20곳입니다. 목사가 평생을 애써도 개척교회 1곳 하기도 힘든데, 바울은 그 열악한 상황에서 20곳이나 개척했습니다. 교통수단도 거의 도보인 시대에 걸어다니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극심한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막 짓는 일로 개인 생활을 해결해 가면서 선교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주님의 그릇은 무엇보다 성령이 충만해야합니다. 그릇 안팎이 성령으로 도금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주님을 위해 제대로 쓰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부디 성령충만하셔서 주님께 쓰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는 그릇으로 세움을 받으십시오. 잡다한 것들 다 비워내셔서 주님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십시오. 그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창세 전에 이미 내가 주님의 택한 그릇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정체성을 잃지 마십시오.</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br></p>
<!-- paragraph:p002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ukiuF75rjxs"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