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긴 겨울잠에서 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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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이 엊그제였습니다. 경칩은 놀랄 <경>(驚), 벌레 <칩>(蟄)을 써서 <첫 천둥소리에 잠자던 땅속 벌레들이 깬다>는 뜻의 절기입니다. 기후 변화로 요즘은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전에는 이즈음에 한랭전선의 남하로 자주 천둥이 쳤는데 그 소리에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며 뱀 등의 생물들이 놀라 긴 겨울잠에서 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봄>이라는 순수 우리말은 <숨겨져 있던 것이 보인다>는 뜻에서 온 것입니다. 겨우내 눈속에 파묻혀 있던 만생물의 기운이 이제 차츰차츰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구약 사무엘하 11장은 <해가 돌아와>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이는 히브리인들의 계절 감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다시금 새봄이 돌아왔다>는 뜻이고, 또 그 말에 이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지금까지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지를 크게 펴고 다시 한 번 뭔가 새 일에 착수할 시기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며,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합니다(롬 13:11-12). 다윗도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고 했습니다.
살다 보면 어쩌다 밤의 욕정에 불타오를 수도 있고, 해가 지면 남의 눈을 피해 모종의 음모에 가담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어둠이 깔리면 숨겨져 있던 죄의 본성이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정신을 차립시다. 근신합시다. 깊은 동면에서 깨어납시다. 고 함석헌 선생이 <슬프면서도 녹아드는 혼의 기도이자 나를 몇 번이고 다시 일으켜 세워 준 시>라고 평한 <퍼시 비시 셀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는 먼저 찬바람이 불어 죽은 듯이 앙상하게 얼어붙은 자신의 삶을 슬퍼합니다.
<기껏 웃어 본다는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고통이 도사렸고 한껏 기쁨을 부르는 노래 속에도 언제나 한없는 슬픔이 깔려있네>
그러나 시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금 희망을 외칩니다.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 잎새처럼, 구름처럼! / 우주 사이에 휘날리어 / 새 생명을 주려마 / ... 내 입술을 빌려 이 잠자는 지구 위에 / 예언의 나팔소리를 외쳐라 / 오~ 바람아 / 겨울이 왔으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당연히 우리의 삶에도 밤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결코 밤이나 겨울에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지금은 꽃샘추위보다 더 매서운 경기한파에 다들 마음이 잔뜩 얼어붙어 있고, 모두가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영적인 긴장과 <깨어 있음>입니다.
고난의 계절인 이 사순절에 <깨어 있으라!>(마 26:41)는 주님의 음성과 더불어 훈훈한 봄소식도 함께 듣게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