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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n 가서 실천하라(눅 10:25-37)

20150301n

눅 10:25-37

가서 실천하라!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늘은 3.1일인데, 삼일절 기념주일이기도 하고, 사순절 둘째주일이며, 총회가 제정한 사회봉사주일이기도 합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나옵니다. 율법교사는 서기관을 가리킵니다. 이 서기관은 이미 정답을 알고 예수께 묻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주님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니 서기관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렇듯 서기관은 정답을 잘 압니다. 서기관은 정답을 모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행함이 없었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유명한 비유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입니다. 여기엔 제사장, 레위인도 나옵니다. 그들은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한 성직자들입니다. 25절에 등장하는 율법교사도 서기관 아니면 바리새인으로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동급의 유대 사회의 리더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당시 사회 리더에 대한 주님의 신랄한 고발과 비판입니다. 


주님이 제사장이나 레위인 뿐만 아니라 질문했던 율법교에게도 날카로운 비판과 고발하십니다. 그들은 죽어가던 이웃을 보고도 피해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돌보아 줍니다. 당시 유대 사회 지도자들은 이런 실천이 없었습니다. 정답은 훤히 꿰고 있었는데 그 말대로 실천을 안 한 겁니다. 주님은 오늘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로 사는 것인지를 제시하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치는데, 그들이 욕하던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깁니다. 


우리는 봉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이 명하신 선한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사마리아인을 보십시오.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깁니다. 이웃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강도 만난 자를 외면했을까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당했다고 합니다. 틀림없이 유대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냥 지나쳤을까요? 강도 당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만약 강도만난 자가 죽었다면 시체를 만지는 일이 되어 안식일에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다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발동했습니다. 주님도 인간 본연의 동정심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한 말씀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인이 지역 감정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강도 만난 자를 지나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인간 본연의 동정심을 발동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사회봉사의 중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따지거나 계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발동하지 맙시다. 그럴 때만 사심 없는 사회봉사가 성립됩니다. 주님은 이 예를 드시면서 ‘너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당시 지도자들에겐 이런 이웃사랑의 실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사실을 신랄히 비판하며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창작하신 겁니다. 주님이 고의로 레위인과 제사장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가장 경멸하던 사마리아인도 등장시킨 겁니다. 


‘너도 가서 이같이 하라.’ ‘너도 가서 이를 행하라.’ 실천과 봉사, 희생을 강조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인간 본연의 측은지심을 발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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