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1m 주님이 우시다(눅 19: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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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m
눅 19:41-44
주님이 우시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흔히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합니다만, 성경은 오히려 우는 자가 복되다고 합니다. 팔복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웃으셨다거나 남을 웃겼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대신 우셨다는 기록은 여러 번 나옵니다. 친구인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실 때도 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에 보면 주님이 그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도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길에 감람산에 머무르며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우셨다고 합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는 우정의 눈물이었고, 잡하시기 직전 겟세마네에서 운 것은 인류를 위해 흘린 대속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보며 우신 것은 조국과 민족의 현실을 생각하며 흘린 애국의 눈물이었을 겁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주일이자 삼일절이기도 해서 주님이 감람산에서 흘린 눈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감람산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선 지도자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으로 우셨습니다. 부패한 예루살렘의 정치지도자들, 종교지도자들을 보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리신 겁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에서 같은 본문을 보면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외세 로마에 빌붙어 조금씩 나라를 팔아먹었고, 종교지도자들은 돈으로 성직을 사고팔며 바른 말하는 선지자를 박해하면서 자기들의 기득권 수호에만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주님 시대에 대제사장이 둘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헤롯을 가리켜서는 <여우>라고 했고, 종교지도자들을 가리켜서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늘날 서울을 보신다면 어떠실까요? 아마 우실 겁니다.
수녀와 국회의원이 한강에 빠졌습니다. 누구를 먼저 건집니까? 국회의원입니다. 일단 그부터 빨리 건져야 한강이 덜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나 정치에 대한 냉소, 불신이 깊습니다만, 특히 우리나라는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동화가 있습니다. 망신살 뻗친 임금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다 벌거숭이입니다. 인사청문회를 해보면 그런 벌거숭이들이 없습니다. 총리, 장관, 검찰총장, 국정원장 후보면 우리나라 지도자 0.05%에 해당하는 엘리트 중 엘리트입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다 벌거숭이인데 말입니다. 거지왕자란 동화도 있습니다. 왕자인데 거지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항상 벌거숭이 임금님과 거지 왕자가 생각납니다. 지도자들은 다 벌거숭이고, 덕분에 국민들도 다 거지입니다. 원래는 왕자인데, 벌거숭이 임금 때문에 국민 모두가 거지가 되어 천하게 되어 비루하게 살아가는 나라, 저는 주님이 지금 우리나라를 보신다면 그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실 것 같고 분노하실 것 같습니다. 이사야도 그랬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사 1:5). 원래 한국교회는 걸출한 민족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서재필, 이상재, 김규식, 이승훈, 조만식, 안창호 등입니다. 이들이 원래 교회지도자들이었는데, 나라가 어려워지니까 나라를 구하는 데 팔 걷고 나섰습니다. 3.1운동도 다 이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입니다. 요즘은 이런 인물이 없고 사람들로부터 지탄받는 사람들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도 교회지도자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다 욕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주님이 안타까워 하시며 울고 계실 것 같습니다.
다음은 주권을 잃은 민족 현실 때문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42절을 보십시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주님 시대를 기점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평화에 대해 눈이 멀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미 주전 931년에 남북 분단이 되었습니다. 그 분단된 남북왕조가 바벨론과 앗수르에 각각 다 망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사실상 단 한 번도 독립된 주권국가를 이뤄보지 못한 채 바사, 헬라를 거쳐 주님 시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기간이 1000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43절 이하를 보십시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게 바로 주후 70년에 있었던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초토화를 미리 내다보시며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완벽하게 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비극적인 그림을 주님이 미리 내다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며 우신 겁니다. 실제 이스라엘을 주후 70년에 로마에게 철저히 망해서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 생활을 합니다. 천덕꾸러기 생활을 하다가 우리보다 3년 뒤인 1948년에 지금의 팔레스틴에 기적같이 나라를 회복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우신지 1900년 만에 잃어버린 나라를 재건하는 겁니다. 그 사이에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살해당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오죽하면 뱀과는 같이 잘 수 있지만 유대인과는 같이 못 잔다고 했을까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은 운명이 비슷합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 비슷한 시기에 나라를 재건한 것, 지금도 우리나라가 북한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면,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과 일촉즉발의 위기상태에서 대치중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언젠가 황장엽 씨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남한에 와서 살아보니 남한은 병이 들대로 든 썩은 사회고, 북한은 미칠대로 미친 괴물 같은 사회다. 이게 남북 양쪽을 살아본 사람의 적나라한 고백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습니다만, 우리에겐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초기 우리 지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나라를 위해 지도자를 위해, 특히 교계 지도자들을 위해, 이 땅의 평화와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며 모범을 보인 것처럼 우리도 절절한 심정으로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윈스턴 처칠의 전기를 보면, 2차 대전 중에 국회에서 중요 안건을 처리하는 중인데, 처칠 수상이 맨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자는 겁니다. 사회를 보던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치면서 소리칩니다. ‘지금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결정 자리에서 수상이 그렇게 졸면 어떻게 합니까?’ 처칠이 깜짝 놀라 일어나서 ‘이런 중요한 시간에 어떻게 좁니까? 저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야말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때입니다. 스코틀랜드는 메리 여왕이 통치할 때 제일 암흑기였습니다. 정치, 종교, 경제가 붕괴된 때였습니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저 유명한 존 낙스입니다. 그는 ‘주님, 스코틀랜드를 제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제게 죽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원래 존 낙스는 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운동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메리 여왕이 무서워 프랑스나 스위스로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금식기도를 통해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두려워 않는 위대한 개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메리 여왕이 존 낙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리 여왕은 영국보다도 존 낙스의 기도가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결국 스코틀랜드를 개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 낙스의 묘비에는 ‘여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개혁가가 누워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바벨론 포로생활로 지칠 대로 지쳐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마른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라고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합니다. 그대로 했더니 그 마른 뼈들이 지극히 큰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나라 사정이나 형편, 국민들의 좌절감, 패배의식, 분노가 거의 과거 이스라엘의 바벨론 시절과 크게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마른 뼈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위대한 여호와의 군대로 거듭났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하면 교회와 사회, 나라가 새로워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것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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