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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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동생네 가족과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어머님께 세배하고 배추전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곧장 서울 인왕산 자락의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습니다. 지난주 월요일(16일)이 윤동주 시인 서거 70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추석, 설 같은 명절 연휴에는 휴관인 줄 알았지만 문학관 뒤로 이어지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라도 오를 양으로 간 것입니다.
<윤동주 문학관>은 원래 용도 폐기된 채 인왕산 중턱에 방치되어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습니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시절 윤동주는 인왕산 아래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하며 자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가다듬곤 했는데 실제 그의 대표적인 시들이 거의 이 시절에 쓰여졌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종로구가 2012년 지금의 자리에 시인의 문학관과 언덕을 조성한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1941.11.20, 서시)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도 교회의 장로였고 아버지 영석도 교회 장로이자 소학교 교사였으며, 윤동주 역시 유아세례를 받은 독실한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명동 소학교, 용정 광명학교 중학부, 평양에 있었던 숭실학교를 거쳐 1938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합니다.
<... 별 하나의 추억과 / 별 하나의 사랑과 / 별 하나의 쓸쓸함과 / 별 하나의 동경과 / 별 하나의 시와 / 별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 ...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 풀이 무성할 거외다.>(1941.11.5, 별 헤는 밤)
시인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진학합니다만 1943년 한글로 시를 쓰고 불온한 사상을 전파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이듬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 27세를 일기로 옥사합니다. 유해는 고향인 연변 용정으로 옮겨져 그의 가족들이 출석하던 동산교회 묘지에 안장됐으며, 1968년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는 그의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또 최근 연세대는 윤동주가 재학시절 기숙했던 핀슨홀 전체를 <윤동주 기념관>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맑고 투명한 시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조국의 현실을 아파했던 슬픈 천명(天命)의 시인 윤동주, 그는 나라를 잃은 엄혹한 시대를 별이 바람에 스치듯 그렇게 스물일곱 해를 살다 갔습니다. ㅁ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고뇌하며 모국어로 시를 쓰다 비참하게 요절한 청년시인, 그의 인생은 너무 비장해서 눈물겹고 너무 고고해서 아름답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가 남긴 시를 너무 쉽게 읊으며 돌아서서는 부끄러움을 잊고 사는데 너나없이 이제부터라도 하늘을 우러러 별을 헤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1941.5.31., 십자가)
주님의 고난을 기리는 이 사순절 첫째 주일 아침, 25세 때 쓴 윤동주의 <십자가>처럼 모가지를 드리우고 조용히 피 흘리는 삶을 감수하리라는 순명의 결단이 있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