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50215n 그리스도인의 필수(고전 9:27)

20150215n

고전 9:27

그리스도인의 필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오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는 두 번 다시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바울이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파하고, 정작 나는 버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그러한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자신의 구원을 잘 관리하며 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한번 구원 받았기에 버림을 당할 일은 없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늘 근신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필수 항목입니다. 자신의 몸을 치면서까지, 내가 얻은 구원을 상실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늘 잘 관리하고 챙겨서 살아야 할 몇 가지 요소입니다. 

첫째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구원의 확신이 넘치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넘치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신앙생활에 힘이 있습니다. 그게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자주 회의에 시달립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늘 불안정합니다. 구원파가 왜 구원파입니까? 구원파는 자기들이 구원파라고 하지 않습니다. 원래는 복음침례회, 대한예수교침례회, 기독교복음침례회 등이 교단명입니다만, 우리는 그들을 구원파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전도할 때, 당신 구원받았느냐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네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머뭇거리면 당신 구원 못 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모르느냐는 겁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확신이 없다고 해서 받은 구원을 빼앗기거나 상실되지는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구원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구원의 확신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감사하며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구원의 확신이 꼭 필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제게 구원의 확신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이면 구원의 확신을 달라고 기도하며 구원의 확신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삽시다. 그래서 좀 기운이 넘치는 신앙생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필수조건은 성령충만입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기름이 바닥나면 더는 굴러갈 수 없습니다. 기름이 탱크에 조금 남아 있는 상태도 불안합니다. 그러나 기름이 가득 차면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충만해야 삶이 풍성해집니다. 우리의 삶이 메마른 이유는 성령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우리 삶이 넉넉해지고 풍성해집니다. 성령이 고갈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성령의 정도를 뜻하는 물량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성령을 많이 바든 게 성령충만이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 내가 얼마나 복종하며 사는가, 즉 나의 복종지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내 의지와 노력입니다. 내가 결단해서 성령의 뜻대로 사는 삶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므로 내 노력이 필요합니다. 넉넉하게 순종하고 충분히 복종하는 삶이 곧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나의 노력, 희생, 헌신, 내 뜻을 꺾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내 삶이 보다 넉넉해지고 강건해집니다. 믿는 자 안에는 다 성령이 계십니다. 예민한 영혼의 촉각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께 그때그때 복종하면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투명한 영성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과 부단히 교감하며 살면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행복합니다. 지금은 성령의 계절입니다. 성령과의 관계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성령의 계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넉넉해지고 풍성해집니다. 성령충만이 우리의 필수요건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전파입니다. 이것은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필수과목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빚입니다. 바울은 복음전파를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빚을 안 갚으면 벌 받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복음전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노방전도가 싹없어졌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전파는 부득불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리의 숙제입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입니다. 어떤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복음전파는 우리 필생의 과제입니다. 그야말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힘껏 수행해야 하는 게 복음의 빚을 갚는 겁니다. 우리는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님 얼굴을 제대로 뵐 수 있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