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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50215m 이 복음은(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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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50215m</p>
<!-- paragraph:p0002 -->
<p class="p1">롬 1:1-7</p>
<!-- paragraph:p0003 -->
<p class="p1">이 복음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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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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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7 -->
<p class="p1">신약성경의 편집순서는 주님의 생애를 소개한 복음서부터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그 복음서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무려 21권의 서신들이 나옵니다. 제일 마지막에 소위 예언서라는 계시록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권의 서신 가운데 제일 앞에 나오는 게 로마서입니다. 왜 로마서가 21권의 편지 가운데 제일 앞에 배치되어 있을까요? 가장 먼저 기록되었기 때문일까요? 제일 분량이 많아서일까요? 아닙니다. 신약성경을 편집하는 사람들의 판단에 의하면, 많은 편지 가운데서 로마서가 가장 비중이 크다,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약성경 27권의 배치가 그 비중이나 중요성에 따라 순서를 그렇게 정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로마서만큼은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내용의 비중 때문에 제일 앞에 배치한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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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9 -->
<p class="p1">로마서만큼 구원의 도리를 명쾌하게 전하는 성경은 없습니다. 제가 늘 말하듯, 성경 66권을 다 보지 못하는 경우라면 로마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책입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서나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서 등은 그 교회에서 발생한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좀 다릅니다. 바울 시대 세계를 주름잡던 초강대국은 로마였습니다. 로마가 전 세계의 심장이었습니다. 바로 그 로마를 향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변증하려고 기록한 게 로마서입니다. 어떤 특정 사건을 해결하려고 조언한 편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복음의 에센스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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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로마서는 바울이 썼습니다. 바울은 원래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뵙고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골수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랬던 유대교의 전사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체험한 후 그의 삶과 생애를 바쳐 오직 복음만을 증거했습니다. 당시 그가 목숨을 걸고 전 생애를 바쳐 증거했던 복음의 진수가 다 로마서에 망라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시면 군더더기가 없고 구원의 핵심적 도리만 있습니다. 저는 늘 로마서처럼 설교를 하려고 애써왔습니다. 형식도 로마서처럼 명쾌하고 간결하게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설교집을 내겠다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사양하다가 설교 제목을 뽑아봤더니 로마서 본문이 가장 많았습니다. 제 설교의 모델은 로마서입니다. 제 설교는 로마서 벤치마킹입니다. 로마서에는 복음, 구원, 믿음,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필수불가결한 주제들이 나와 있습니다. </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오늘 우리의 주제는 복음입니다. 기독교는 물론 자선을 많이 해온 게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자선단체나 구호단체가 아닙니다. YMCA나 YWCA 같은 단체가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해서 자기만족이나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단체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기독교의 내용은 복음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복음입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탄탄해야 우리의 믿음이 건강해집니다. 기초가 불안정하고 흔들리는데 어떻게 그 위에 집을 짓겠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기가 전하는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증거한 복음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은 두 가지만 생각해 봅니다.</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우선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라는 게 바울이 증거한 복음의 결정적 내용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은사라는 겁니다. 은사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부르심을 받아’, ‘택정함을 입어’,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에게’ 이런 표현들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구원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우리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구원을 받기만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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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우리는 늘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하나님이 제시하는 구원의 조건을 우리 쪽에서 충족시켜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설교입니다.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이 우리 죗값을 갚아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구원을 믿는 겁니다. 믿습니까?’ 이게 복음적인 설교 맞습니까? 대단히 그럴 듯하고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을 강요합니다. 믿음을 윽박지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믿습니다’ 합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안 믿어진다’고 합니다. 믿음은 자력적이거나 자생적인 게 아닙니다. 믿음은 인간 선택이나 결단,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전제나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의 열매입니다. 제가 가장 여러분께 강조한 말은 ‘우리는 믿어서 구원을 얻은 게 아니라 구원을 얻었기에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제가 여러분께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분은 납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얘기하는 것처럼 시침 뚝 떼고 강조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 이하입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선을 행하는 자, 깨닫는 자, 하나님 찾는 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한 이후로 인간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채 태어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구요? 어떻게, 무슨 재주로 믿습니까? 죽은 시체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5절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은사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믿음을 성령의 은사라고 했습니다. 인력으로 하나님을 믿을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믿음을 주셔야 우리가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도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일방적으로 살리고 일방적으로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믿어준 대가가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가 복음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이하입니다. “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친히 다 알아서 하십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은 내가 믿어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하셔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로마서 1장 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은사’는 복음입니다. 구원입니다. 방언이나 신유나 환상 이전에 구원이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하고 분명히 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쓴 서신이 로마서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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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오해하지 마십시오. 혼동하지 마십시오. 복음은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는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역설하는 게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울며불며 회개를 하셨다면, 그것은 거듭났기 때문에 그렇게 회개한 것이지, 울며불며 회개했다고 구원 받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수를 믿고 있다면,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해주셨기에 거기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있는 겁니다. 본의 아니게 지금 여러분이 믿고 있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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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따라서 하나님께 우리가 받은 구원의 주도권이 있기에 우리의 구원이 절대 훼방을 받지 않는다는 게 오늘 우리가 상고할 두 번째 주제입니다. 내 노력으로 이룬 구원이라면 중도에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강할 때가 있는가 하면 약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구원을 훼방을 받지 않습니다.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이렇게 저렇게 되는 성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어서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그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병들어 아플 수도, 사업에 실패할 수도, 큰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이룩하신 구원은 절대 엉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영원하시듯이 그분이 이루신 구원도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망도 안 됩니다. 천사도 안 됩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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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우리는 자꾸만 인과율로 구원 개념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내 안에서 자꾸만 원인을 찾습니다. 내가 믿었다. 내가 회개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다. 그래서 나는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구원은 원인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사랑이 내가 받은 구원의 원인입니다. 내 안에는 원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한 겁니다. 그래서 자꾸만 내 안에서 근거와 원인을 찾습니다. 인과율의 틀에서 이해하려는 겁니다.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할 때는 괜찮은데, 좀 소홀하면 당장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게 됩니다. 구원마저 흔들리다가 이제 나를 버리셨다고 느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믿고 회개해서 구원 받은 게 아니라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사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내 노력의 대가일 뿐입니다. 복음은 은혜이기에, 선물이기에 복된 소식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결과요 열매이기에 감사한 겁니다. 내가 지금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행복한 겁니다. 그것은 내가 구원 받았다는 물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었습니다. 날마다 죄를 먹고 마시며 세상과 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 모든 허물을 용서하셨고 구원하셨습니다. 회개, 믿음, 감사는 다 그 다음에 온 것입니다. </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로마서 4장 5절은 하나님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우리가 경건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신 겁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눈멀고, 귀먹어 완전히 죽은 영혼인데, 하나님이 고쳐주시고 살려주셔서 주님을 믿게 하신 겁니다. 따라서 절대 내 구원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구원도 믿음도 은혜 은사 개념도 진정한 감사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듯이, 이 구원을 영원히 지키는 일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알파와 오메가도 그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천국까지 가는 것을 &lt;견인&gt;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이 &lt;견인&gt;입니다. 당신의 자녀를 천국까지 달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까지 데려가십니다. 당신이 일방적으로 구원하셨기에 당신이 책임지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국을 등지고 어둔 세계에서 헤매 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잃지 않습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p>
<!-- paragraph:p0026 -->
<p class="p2"><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우리는 단지 그 사실 때문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회에서 감사를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 하나밖에 없습니다. 선 구원 후 믿음이기에 감사하는 겁니다. 선 구원 후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 주도권과 주체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기에 안전하고 부도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결단하고 믿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끌어오셨기에 이 자리에 계신 겁니다. 여러분의 의사로 여기에 나오신 게 아닙니다. </p>
<!-- paragraph:p0028 -->
<p class="p2"><br></p>
<!-- paragraph:p0029 -->
<p class="p1">사실 윤리적으로만 보면,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요즘은 믿는 사람이 더 악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직도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득 보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참 아픈 말씀이지만, 우리는 누구도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 감추고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교회 욕하는 데 가담하지 않습니까? 저는 신자치고 자기 교회 목사 욕 안 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습니까? 은혜는커녕 자칫하면 상처 받고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이기에 때로는 회의에 빠집니다. 신자라면서 신자에 대해 너무 부정적이니까 말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러면서도 다시 교회에 나온다는 겁니다. 주위 등쌀 때문에가 아니고 말입니다. 한 번도 들춰보지 않는 성경찬송을 품에 품고 교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다 은혜입니다. 내 믿음을 관리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마저도 내 구원을 해치지 못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겁니다. </p>
<!-- paragraph:p0030 -->
<p class="p2"><br></p>
<!-- paragraph:p0031 -->
<p class="p1">아무튼 복음에 대한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합시다. 구원은 내 믿음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내 노력과 믿음의 결과라면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는 다 졸지에 구원을 당한 겁니다. 수수께끼지만 말입니다. 바울처럼 우리는 다 구원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꺼꾸러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주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시기에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천사도 안 됩니다. 우리가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이게 로마서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부디 감사와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주님께 기쁨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가 할 일은 감사뿐입니다. 강제로 구원을 베푸시고, 강제로 교회로 이끌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p>
<!-- paragraph:p0032 -->
<p class="p1"><br></p>
<!-- paragraph:p0033 -->
<p class="p1"><br></p>
<!-- paragraph:p0034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RdaP0GznqEY"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