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땅콩과 크림빵



노릇노릇한 빵 위에 아몬드 슬라이스가 뿌려지고 속에는 땅콩 크림이 듬뿍 샌드돼 있는 고소한 빵, 입안에서 미끄덩거리는 버터크림 대신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녹아 없어져 좋아했던 그 땅콩 크림빵 맛이 싹 가셨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들썩인 <땅콩 회항>과 <크림빵 뺑소니> 사건 탓입니다. 


그런데 크림빵 뺑소니의 가해자가 경찰에 자수하자 그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서 유치장을 찾아가 <자수를 했다고 해서 왔다. 잘 선택했다. 고마워서 위로해 주러 왔다>고 한 보도를 접하고 참 놀랐습니다. 졸지에 자식을 잃은 슬픔과 뺑소니라는 아픔에 억장이 무너졌을 아버지가 유치장까지 찾아가 자식의 목숨을 앗아간 가해자에게 용서의 손을 내 민 것입니다. 반면 땅콩 회항의 주인공의 동생은 언니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 확인되어 극명한 대조를 보였습니다. 


얼마 전 일본인 고토 겐지 기자가 이슬람 급진무장단체인 IS에 희생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인 이시도 준코 씨가 이런 말을 해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아들은 늘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다. 나는 이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희생된 고토 기자와 그의 부모님은 일본 기독교단 소속의 덴엔초후교회의 오랜 신자였습니다. 


요즘 유튜브에 <용서의 힘>(The Power of Forgiveness)이란 동영상 하나가 화제입니다. 2003년 11월 미국에서 무려 48명을 연쇄 살인한 <그린 리버 킬러> 사건의 재판정,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범인인 <캐리 리지웨이>를 향해 온갖 증오와 저주의 말들을 다 쏟아 냅니다. 그런데 그 중 범인에게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로버트 룰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가지며 사랑한다!> 마침내 희대의 살인범이 울음을 터뜨리며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재판정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는데 이 동영상은 조회수가 이미 백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나폴레옹을 물리친 영국의 웰링턴 제독이 상습 탈영병을 향해 <나는 너를 교육도 시켜 봤고, 채찍으로 매질도 해봤고, 혹독한 노역을 시키며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그러나 너는 결코 돌이키지 않았다>며 사형에 처하려 했습니다. 그때 한 부하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장군님은 이 병사를 한 번도 용서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웰링턴은 그 병사를 용서해 줬고, 그 후 그는 더 이상 탈영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충성스런 군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로 시작되는 주님의 산상보훈은 처음에는 주옥같이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점점 그 멜로디가 격렬해지다 마침내는 <죽는 한이 있어도 보복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데 이르면 그것은 곧 <네 생명을 내게 다오>하는 소리와도 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떠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억울하고 불법하게 체포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끝끝내 자신의 평소 소신과 가르침에 상반되는 방법으로 자기방어를 꾀하시지 않았습니다.


크림빵 뺑소니 희생자의 아버지 강태호 씨는 <평소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쓸 뿐>이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서 유치장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