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8m 다만 이뿐 아니라(롬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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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8m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3절을 다시 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말은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환난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환난을 무릅쓰고, 환난을 견디고 감수하며 즐거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곧 천국 갈 것이니 조금만 더 참자는 뜻입니다. 환난 그 자체를 즐거워하라는 뜻입니다. 환난으로 인해서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지독한 역설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 말씀이 이 구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이 닥치면 그 시험을 기뻐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왜 시험 그 자체를 기뻐해야 할까요? 그게 결국은 불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의 간섭이고, 하나님의 애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환난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그렇습니다. 자식을 낳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애정을 쏟으면서 양육합니다. 심지어 성인될 때까지만이 아니라 결혼한 뒤에도 계속 보살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 이하입니다.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이단들이나 사이비 집단은 자기들 안에 들어오면 환난이 면제된다고 합니다. 14만4천이 차기 전에 빨리 들어오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절대 그런 약속이 없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에게는 환난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합니다. 환난이 없으면 그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생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를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순진한 생각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진하지도 죄가 없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쓰고 때어납니다. 그래서 갓난아이가 태어나 유아세례 받기 전에 죽으면 지옥간다고 생각해서 유아세례가 생긴 겁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전에 이미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닙니다. 원죄를 쓰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이고, 죄인으로 태어나 불가항력적으로 죄를 지어서 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키울 때 반드시 징계를 하라는 게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어리지만 본능적으로 악한 본성이 발동해 어린아이 때도 이미 충분히 악합니다. 어린아이가 막 되게 구는 것은 다 부모 탓입니다. 부모가 징계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용돈 안 준다고, 심지어는 외제차 안 사준다고 부모 살해하고, 증거 없애려고 방화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그렇게 키우시지 않습니다. 방치하거나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징게하십니다. 환난으로 우리를 다스립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의 자식이면 왜 손을 대겠습니까? 죽으라고 때리는 게 아니라 잘 살게 하려고 그럽니다. 사생자는 아무도 매를 들지 않습니다. 잔소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아이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고 저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든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남의 자식이기에 안 건드리십니다. 그 사람들은 악하게 살아도 안 건드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 돌에 맞아 혼절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바울이 깨어나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바울 같은 사람이야 완벽한 성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성자에게도 환난이 필요했습니다. 평생 몸을 찌르는 가시를 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환난이 오면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거나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하며 우리가 넘어지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수 믿으면 환난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이 훨씬 더 잘 되고 분방하게 삽니다. 훨씬 더 재미있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기에 제멋대로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하나님의 징계가 떨어집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일일이 간섭하실까요? 물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인데,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가 소중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선물로 받은 겁니다. 선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받는 사람은 공짜로 받지만, 주는 사람은 선물이 귀할수록 큰 희생을 치릅니다. 설이 다음주입니다. 설이 다가오면 여기저기에 선물을 해야 할텐데, 선물비가 장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값없이 선물로 구원을 베푸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독자를 무참하게 십자가에 다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의 피를 몽땅 바쳤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공짜로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의 독자가 더 소중합니까? 당신이 창조한 피조세계가 더 소중하겠습니까? 당연히 당신의 아들이 더 소중하겠지요. 그렇게 소중한 당신의 외아들까지 바쳐가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구원한 자녀들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값진 존재이기에 절대 그냥 두시지 않고 일일이 간섭하고 개입해서 관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늘 불순종하고 교만하여 꼿꼿하게 굽니다. 그래서 환난을 통해 우리를 다스립니다. 김치 담글 때 가장 중요한 게 소금으로 배추를 잘 절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선수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숙성되려면 먼저 잘 죽어야 합니다. 잘 절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으로 숙성시키기 위해 반드시 환난이라는 소금을 치십니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우리가 고분고분해지게 하십니다. 환난으로 연단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환나의 기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환난은 우선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필요성, 하나님의 절실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나태할 때는 만사형통할 때입니다. 사는 게 참 재미있을 때 신앙적으로는 가장 나태하고 깊은 잠에 빠지기 쉬운 위기입니다. 그때는 전혀 영적 긴장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편하고 배부르고 일 잘 되면 더는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재주나 힘이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 찾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한 대 호되게 맞으면 다시 주님을 찾습니다. 늘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암에 걸리면 그때는 죽기살기로 주님 붙들고 늘어집니다. 그게 바로 환난이 하는 일입니다. 그걸 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주십니다. 환난이 와야 우리가 무릎을 꿇게 되고, 자기 의지로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게 됩니다. 그런 명약이 없습니다. 환난이 없으면 제대로 신앙생활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 무장해제하고 깊이 잠에 떨어질 게 뻔합니다. 왜 하나님이 좋게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환난으로 우리 삶을 간섭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어떤 참담한 한계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절대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비참할 때 하나님을 찾는 게 인간임을 하나님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사형통해서 하나님 찾을 일이 없는 분은 지금이라도 자진해서 빨리 하나 반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복이 아니라 치명적인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환난은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게 합니다. 편안할 때는 누구나 자기가 굉장한 사람인 줄 압니다. 다 자기에게 속고 삽니다. 그래서 교만해지고, 안하무인이 되어 다른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면서 온갖 갑질을 합니다. 땅콩회항사건도 마찬가집니다. 1999년에 입사했는데 2013년에 부사장이 되었습니다. 오너의 자녀이니 무슨 환난을 겪었겠습니까? 이번 사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 승승장구한 사람은 세상 물정이나 남의 아픔을 모릅니다. 해외 유학을 가면 처음에는 1-2년간 어학을 합니다. 죽기살기로 어학에 매달립니다. 독일 같으면 어학시험을 패스하고 나면 정말 우쭐해집니다. 그래서 첫 시간 본격적으로 강의를 들으려고 강의시간에 들어가면 교수 강의가 정말 한 마디도 안 들어옵니다. 낙심천만해서 강의실을 나오게 됩니다. 본 강의에 들어가 봐야 자기 실력이 얼마나 웃긴 수준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환난은 언제나 자신의 진실을 까발립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이만하면 됐다고 착각하고 삽니다. 그러나 시험을 당해보십시오. 자기의 실력이 가차 없이 폭로됩니다. 괜찮은 남자치고 논산훈련소 안 다녀온 사람 없습니다. 요즘도 불미스러운 소식이 자주 들리지만 그래도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난 속에서만 우리는 정말 정직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냉정하게 자기의 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환난은 복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꼭 환난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피하거나 비관하거나 비명 지르지 말고 오히려 그 환난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이 되고, 한 사람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됩니다.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정말 무엇이 소중하고 중요한지를 분간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건강, 물질, 직장, 가족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오해나 경멸, 천대에 빠지게도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쓸 데 없는 데 돈을 씁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하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모든 환상이 다 깨집니다. 모든 거품과 불순물이 환난 불에 타 없어지고 정금만 남습니다. 그래서 환난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정금이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도가니에서 고온의 열을 받아야 합니다. 완전히 타 없어지고 녹아져야 불순물이 제거되고 99.9%의 정금이 탄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환난으로 다듬어 가십니다.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으로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난이야말로 우리가 기뻐해야 할 하나님의 사랑과 간섭입니다.
부디 환난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관심과 복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환난을 이기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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