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저는 요즘 노르웨이 여가수 안네 바다(Anne Vada)의 <봄을 기다리며>(longing for spring)를 자주 듣습니다. 유난히 맑고 촉촉한 영혼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운 이 노래는 노르웨이 민요를 번안한 곡으로 그녀가 직접 제작한 앨범 <끝없는 사랑>(Boundless Love)에 수록되어 있는데 용케도 작년 연말 교보에서 샀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전음악을 하다 1995년 대중음악을 시작한 그녀는 유럽인들이 몹시 사랑하는 뮤지션 중 한 사람인데 노르웨이의 국보급 아티스트인 피아노 작곡가 이베르 클레이베가 그녀의 남편입니다. 안네 바다의 매력은 높은 음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고 단단한 질감의 소리를 낸다는 것, 가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샘물같이 봄을 재촉하는 따뜻한 울림과 청아한 감미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르르 굴러가 흔적도 없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이슬 같은 존재, 그 빈자리에 소소히 댓잎 스치며 날아든 서너 줄기 바람 같은 존재들에게 썩 어울릴법한 보컬, 그래서 우리 정서에도 참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이킹 전성기 이후 600여 년 동안 외세에 짓밟혀 신음했던 노르웨이는 우리 역사와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노르웨이 음악에는 깊고도 아름다운 슬픔이 서려 있고, 우리의 판소리나 구전민요처럼 그들만의 희로애락을 풀어낸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노르웨이가 속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뿐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부 유럽도 봄은 더딥니다. 음악 역사상 봄을 주제로한 곡이 가장 많이 창작된 시기는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 말이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은 대부분 장조에 의한 동요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36곡에 이르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중에서 따스한 햇살과 함께 새록새록 새싹이 돋는 듯한 느낌에 가장 충실한 곡은 역시 제26번으로 알려진 B플랫 장조 K378입니다. 물론 이 곡에도 <봄>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는 않습니다만 첫마디부터 이미 행복감, 안도감, 꿈 등의 봄기운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망하기 직전 만든 가곡 <봄을 기다리며>(Sehnsucht nach dem Fruehlinge)는 자신이 말년에 겪었던 애환과 고뇌, 비애와는 상관없이 매우 밝고 긍정적인 빛깔로 충만합니다. 바장조 6/8박자인 이 곡은 약동하듯 뛰놀며 봄을 재촉하는 노래로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봄노래>라는 제목으로 음악교과서에 실려 마치 우리나라 동요처럼 널리 애창되기도 하였습니다.
<... 산그늘 흰 눈마저 녹아 사라지면 / 나 살던 옛 마을에 봄철이 찾아오네 / 아 즐겁고 기쁘다 봄노래 부르세>
지금 우리는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다 혹독한 겨울입니다. 벌써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바람은 차고 가슴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었는데 봄이 어찌 멀었겠습니까? 이 춥고 시린 계절이 하루속히 지나가기를 기도합시다.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주저앉히거나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없음을 확신하며 오늘은 안네 바다와 모차르트의 <봄을 기다리며>를 들으면서 마음으로나마 봄기운을 느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