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터너의 <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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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 작가들의 그림을 통해 늘 많은 영감과 도전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국민화가 터너(Joseph Hallord William Turnner, 1775-1851)의 1842년 작품인 <눈보라>(Snow Storm)는 눈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위태롭게 흔들리는 작고 희미한 한 척의 증기선이 바다에 떠 있고 높은 파도와 밤하늘의 잿빛 구름이 소용돌이처럼 그 증기선을 위협하고 있는데 그걸 보면 마치 지금 내가 그 눈폭풍 한복판에서 저렇듯 불안하게 흔들리며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처절하게 체감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아닌 게 아니라 터너는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실제 눈보라가 치는 험한 겨울 밤바다에 나가 <나를 갑판 돛대에 묶어주시오.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절대로 풀어주지 마시오!> 하며 사나운 짐승처럼 포효하는 눈폭풍과 밤새도록 사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멀리서 바라 본 풍경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온몸으로 겪고 당하고 마주 섰던 자연의 분노를 그대로 화폭에 옮긴 작품들, 저는 목회 현장에서 자주 터너의 그 목소리와 그림을 떠올립니다. 목회자라면 정말 터너처럼 그렇게 험한 세상의 눈폭풍에 자기의 온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믿는 자라면 그렇게 험한 세상의 눈보라에 당당히 맞서 어둡고도 긴 밤을 꿋꿋이 견뎌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터너의 그림은 우리를 몹시 숙연하게 합니다.
처음 <눈보라>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비누 거품과 회반죽 덩어리>라며 혹평하자 그는 <단순히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의 실체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는데, 비평가 존 러스킨도 <터너는 색채를 이성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고 마치 시력을 되찾은 소경처럼 빛과 자연을 가장 순수한 감각으로 인식하고자 한 화가>였다고 평했습니다.
박목월은 눈 내리는 바다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흰말의 무리가 달려와서는 앞무릎이 팍팍 끊어지며 순간마다 침몰해 갔다. 해면(海面)에 억만 필의 흰말은 천지를 휘몰아 올리는 회오리 바람 / 기둥으로 뻗치며 휘휘 달리며 몰아치며 침몰해 갔다>(‘눈썹B’ 중에서). 눈보라를 해면 위로 달려오는 수억의 흰말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박목월의 <눈썹B>가 침몰과 하강의 치열한 장관이라면 터너의 <눈보라>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납빛 하늘과 증기선이 뿜어내는 흰 연기가 서로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회오리를 만들며 숨막히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화폭을 넘어 마치 내 살갗에라도 와 닿을 듯한 저 소용돌이치는 속도감, 거기에는 실제 온몸으로 눈폭풍을 맞아 본 사람만이 느꼈을 법한 생생한 힘이 실려있습니다. 이렇듯 그의 그림에는 색채와 촉감과 소리가 서로 부딪혀 증폭되면서 온몸을 엄습하는 모종의 숭고함 같은 게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 미술계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존재라는 윌리엄 터너, 최근 그의 생애 마지막 25년을 조명한 영화 <미스터 터너>(마이크 리 감독)가 국내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터너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설립한다는 조건으로 영국 정부에 스케치 1만2천여 점과 스케치북 2백여 권을 기증해 현재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 터너의 전시실 11개가 마련돼 있는데 영화는 터너 그림들의 그 이면 얘기들과 작가의 독특한 인간적 면모를 다룬다고 합니다.
<눈보라>를 통해 삶의 혼돈을 긍정했던 <빛의 연금술사>, 천재적 화가이자 다방면에 박식했던 괴짜 예술가, 독선적이고 괴벽스러우면서도 매우 감성적이고 관대했던 사람, 올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영화로나마 <눈보라>의 화가인 터너를 한 번 만나보십시오.
저도 아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