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5n 네 사람의 믿음(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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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5n
막 2:1-12
네 사람의 믿음
[1]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본문은 네 사람이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주님 앞에 나와 고침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1절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네 사람이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주님 앞으로 들것에 실어 안내를 했는데 주님이 그 중풍병자의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육신도 마찬가집니다. ‘일어나 네가 누웠던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런데 이런 구원의 은혜를 중풍병자를 데려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보신 이 네 사람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우선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삶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잘 믿는데, 가슴이나 머리로는 잘 믿는데, 행동으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주님 앞으로 데려갑니다. 그야말로 행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높이 평가하신 겁니다. 네 사람의 온몸으로 믿는 믿음을 보시고 그들이 안내한 한 영혼을 구출해 주신 겁니다. 이 네 사람이 중풍병자의 어떤 관계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웃이었는지, 친구인지, 친지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은 온몸으로 믿는 신실한 신자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삶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온몸으로, 내 존재 전부로 믿는 믿음입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의 진가가 나타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세계 제1의 줄타기 명수는 미국의 찰스입니다. 한번은 나이아가라폭포를 횡단했습니다. 1967년의 일입니다. 기네스북에 기록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대도 없이 미국쪽에서 캐나다쪽으로 밧줄을 타고 건너갔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캐나다쪽에 나타났습니다. ‘조금 전에 장대도 없이 건너온 것을 보셨는데, 다시 건너갈 줄 믿느냐’고 하니 사람들이 ‘믿는다’며 열광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은 수레를 가져가면 무사히 건너갈 줄 믿느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찰스는 수레에 탈 사람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도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수레만 끌고 캐나다쪽에서 미국쪽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믿음은 자기 몸 전부를 던지는 겁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밧줄을 치시고 우리에게 이 수레에 타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끄시는 수레에 우리 온몸을 던져야 합니다. 주님은 안전하게 이 땅에서 천국까지 수레를 끌고 가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적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온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머리나 뜨거운 가슴으로는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결단을 못합니다. 주님이 끄시는 수레에 타겠다는 사람이 드뭅니다.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네 사람은 온몸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평가하십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이 안내한 중풍병자를 구원하셨습니다. 푸른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은 본문에 등장하는 네 사람처럼 온몸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구원의 동역자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사람의 믿음은 합력하는 믿음입니다.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나왔습니다. 꺼져가는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네 사람이 합심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독불장군,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아니고 더불어 믿는 믿음, 함께 격려하며 믿는 믿음, 함께 손잡고 주의 사역에 나서는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꺼져가는 한 생명을 주님 앞으로 안내하는 일은 합력해야 합니다. 작은 힘이지만 함께하면 큰 힘이 됩니다. 주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십니다. 네 사람이 한 사람의 생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을 주님이 감동하신 겁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데 하물며 한 영혼을 구하는 일이야 더 낫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동역하고 합심해야 합니다. 기도도 합심해서 기도하면 훨씬 더 좋습니다. 그야말로 땅에서 매는 것마다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푸는 것마다 하늘에서도 풀리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푸른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이 합력하는 모습에 주님이 감동하십니다.
네 사람의 믿음은 비상하게 모험하는 믿음입니다. 4절입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네 사람이 멘 들것이 주님 앞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최선은 다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대개는 포기합니다. 그런데 네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험적입니다. 앞으로 나가는 길이 막히니까,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유대인들의 지붕은 평평합니다. 그래서 그 지붕 위에서 기도도 하고 그럽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습니다. 네 사람의 발상 자체가 비상하고 모험적입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지금 방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들것에 누운 사람을 달아 내릴 만큼 지붕을 뜯었으면 아마 다 뜯어냈을 겁니다. 주님은 이런 그들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로 영혼과 육신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네 누웠던 상을 들고 가라.’
우리는 믿음의 용기와 담력이 없습니다. 사방이 막혀있습니까?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절망적입니까? 앞으로 못 나가면 지붕 위로 올라가 위에서 내려오는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의 획기적인 전환도 필요합니다. 아래만 내려다 보지 마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거기에 출구가 있습니다. 어느날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 풍랑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베드로가 ‘나도 당신처럼 바다 위를 걷데 해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정말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곧 파도를 보고 빠집니다. 그때 주님이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느냐?’고 하십니다. 주님이 정확히 보신 겁니다. 주님이 믿음이 없다고 하십니다. 본문의 네 사람은 거칠고 위험한 모험을 단행했고, 마침내 중풍병자의 육신과 영혼이 구원을 얻게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12절을 보면,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고 합니다. 푸른교회 여전도회 회원들도 이런 모험을 감행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사,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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