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홀로코스트와 야스쿠니


지난주 월요일(19일) 일본의 아베 총리가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제2차 대전 때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 6백만 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그 기념관에서 허리 굽혀 헌화도 하고 멋들어진 연설까지 했습니다.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 배울 수 있었다>, <대학살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인권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베의 그런 행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독일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요 명백한 홀로코스트 가해자였던 일본이 마치 남의 얘기하듯 단 한 마디의 자기 반성이나 사죄도 없이 끝까지 나치의 잔혹사만 언급한 까닭입니다. 7,80년 전 나치 정권이 유럽 전역에서 한창 홀로코스트 만행을 자행하고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에서 수만 명의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강제해 중국 혹은 동남아 전선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수 십 만의 이 땅의 아들들 역시도 군인으로 혹은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노역자로 징용을 당해야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30만 명의 중국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난징대학살, 우리나라의 제암리 사건, 간도참변, 관동대학살, 독립운동을 하다 혹은 전쟁 중 포로가 된 한국, 중국, 러시아인 등을 마루타로 각종 세균, 독가스 등의 생체실험을 하며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하고도 이를 부인하거나 숨기기에 급급한 그들의 파렴치한 모습에 신물이 난 탓입니다. 


아베의 홀로코스트 추모가 위선이나 거짓된 연출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진 조의가 되려면 나치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할 때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질렀던 온갖 만행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 피해국과 피해 당사자들을 찾아 진심으로 무릎 꿇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시인하고 사과했던 고노담화를 훼손하며 부정한 작년 6월의 보고서를 철회해야 합니다. 아베는 태평양전쟁 범죄자들을 영웅시하고 신격화하며 도조 히데키를 위시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이를 비판해온 한국과 중국을 비웃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홀로코스트에 헌화하며 자신들의 전쟁범죄에 희생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민들에게 사죄의 말 한 마디도 없었다는 것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세계인들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유대인 격리지역)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었던 사건은 전 세계인들에게 전율과도 같은 감동을 안겼습니다. 당시 세계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실 빌리 브란트도 개인적으로는 나치의 피해자였습니다. 반나치 활동을 하다 망명했고 나중에는 국적까지도 박탈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1939년 9월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촉발된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로서의 사죄를 위해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현 메르켈 독일 총리도 2009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다시 한 번 깊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아베는 관방장관의 자격으로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었습니다. 또 전범 도조 히데키의 미망인이 매년 일본 정부로부터 80만 엔의 국가원호금을 받고 있을 때 우리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사과 한 마디 보상 한 푼도 없이 피눈물 나는 한을 씹으며 <강제로 동원한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였다>는 모욕과 함께 하나 둘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따라서 아베가 여전히 야스쿠니 참배를 고집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며 과거사 도발을 계속하는 한 그의 이번 홀로코스트 헌화는 철저한 위선이고 가증한 이중인격일 뿐입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새해, 아베의 참회와 진정성 있는 사죄를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