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이중섭의 사랑과 절망



김춘수의 <내가 만난 이중섭>이라는 시입니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 ... 한참 뒤에 나는 또 /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 이중섭을 보았다 /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 >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맑은 예술혼을 불사르다 스러진 이중섭, 살아서는 눈물겹도록 궁핍했으나 죽어서는 신화가 된 사람,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라는 평에도 전쟁과 가난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홀로 살다 40에 고독사한 비운의 천재, 반 고흐처럼 마지막에는 심한 정신분열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세상에 이런 화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뜨거웠던 사람, 그림마다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도록  녹아 있는 그는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지난 수요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을 보고 왔습니다. 불운했던 그의 생애를 떠올리며 본 그림 한 점 한 점이 다 처연하고 먹먹했습니다. 흔히 이중섭하면 붉은 황소의 이미지를 연상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 상당수는 애틋한 가족 사랑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크게 5개 전시실로 나눠져 있는데 유화, 드로잉, 채색화는 물론이고 일본 유학시절 후에 아내가 된 야마모토 마사코(이중섭이 지어준 한국명 이남덕)에게 전했던 엽서화, 재료비가 없어 담뱃갑 속 은지에 새겨 그린 은지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되는 작품입니다. 또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20여 점의 편지화는 아직 생존해 있는 95세의 이남덕 여사의 일생을 담은 다큐영화와 함께 소개되고 있어서 더욱 절절해 보였습니다. 


모진 생활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일본으로 보내고 나서도 여전히 가난에 짓눌려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던 그였지만 이중섭의 그림에는 어디에도  헤어져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대신 가족이 함께 원을 그리며 춤을 추거나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먹으며 행복해 하고, 갯벌에서 게를 잡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많습니다. 어둠 속에서, 슬픔과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서 더욱 빛나는 얼굴, 그게 화가 이중섭이 지닌 역량이자 또 그의 그림의 힘이었습니다. 


이중섭이 일본인으로서는 드물게 가톨릭 집안의 크리스천이었던 부인 이남덕 여사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언제나 내 가슴 한가운데서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나의 소중하고도 유일한 천사 남덕,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여!!! 하루라도 빨리 만나 함께 살고 싶소.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두드리며 마음속으로 소중하고도 멋진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오.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오. 세상에서 나만큼 자기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 버렸소.>


내년이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 사후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