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50104m 좋은 양, 선한 목자(요 10:1-15)

20150104m

요 10:1-15

좋은 양, 선한 목자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을미년 새해입니다. 올해는 우리 푸른교회의 해입니다. 운명적인 것 같습니다. 올해는 양의 해이고, 우리는 다 주님의 양들입니다. 2015년은 프로젝트의 해입니다. 우리 사전에는 2016년, 2017년은 없었습니다. 오직 2015년만 있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그냥 양이 아니라 청양의 해입니다. 푸른 양의 해입니다. 우리 푸른교회가 청양입니다. 더구나 제가 양띠입니다. 그래서 천상 올해는 우리 푸른교회의 해입니다. 청양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고고하게 사는 야생 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개인과 우리 교회의 소망이 알뜰하게 이루어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좋은 양, 선한 목자입니다. 최상의 조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다윗이 주님의 목자 되심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를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주님입니다. 본문 11절 이하도 보십시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는 지난 해 4월 참사 당시에 배 안의 승객을 버리고 자기가 제일 먼저 달아났습니다. 그가 왜 승객을 다 버리고 달아났을까요? 삯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년 단위의 계약직입니다. 이번에 재판 받을 때 보니 자기는 임시 선장이었기에 자기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삯군은 이리가 오면 제일 먼저 달아납니다. 양에 대한 책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자기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킵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그 물증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선한 목자 되심의 영원한 표상입니다.


문제는 양들이 과연 좋은 양인가 하는 겁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이 밝히신 좋은 양을 보겠습니다. 


우선 좋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듣습니다. 3절 이하입니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이스라엘의 목축은 이렇습니다. 낮에는 각자의 양을 치나, 해가 지면 마을의 공동 우리에 양을 재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목자가 우리에 가서 자기 양을 불러내는 겁니다. 그런데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말씀은 그런 그들의 목축 방식을 배경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목자는 양이 무리이지만, 절대 집단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양이 100마리라 해도 개별적으로 상대합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지어주고, 또 그 이름을 불러 자기 앞으로 모은다고 한 말씀이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그대로 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에서 목자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목자에게서 양은 소유나 상품, 손익계산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마리아야... 우리는 주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실 때 예 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응답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마태복음 13장 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그런데 나쁜 양도 똑같습니다. 목자보다는 세상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해 답하느라 주님의 음성에 답하지 못하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양은 반드시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목자 되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깁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새해에는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응답하십시다. 세상에 너무 매어 살면 세밀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목자가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고, 목자가 지시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양이 좋은 양입니다. 올해는 목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좋은 양이 됩시다.


좋은 양은 목자의 뒤를 잘 따라가는 양입니다. 4-5절입니다.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은 원래 방향감각이 가장 무딘 짐승이라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밖에 나갔다가 제 집을 잘 찾아옵니다. 다른 동물은 주인이 뒤에 가고 동물이 앞에 가는데, 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은 주인의 뒤를 따릅니다. 지금도 낙농국가를 보면 다 그렇습니다. 또 양은 자기를 방어할 수단이 부족합니다. 뒷발질이 강한 것도 아니고, 소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보호색도 없고, 이빨이 날카롭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의존적이어서 목자가 긴 지팡이로 인도하고 포식자로부터 양을 지키지 않으면 양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양은 자꾸만 제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이사야 53장 6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합니다. 실은 우리가 다 이렇습니다. 우리가 목자의 음성을 듣는 이유는 목자를 따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기에 우리가 목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절대 그대로 두고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1마리의 양을 찾아 나섭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 이하입니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이렇게 철저한 목자가 바로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엉뚱한 데로 간다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강제 하십니다. 올해는 달아나지도 한눈팔지도 맙시다. 자식이 부모 가슴에 가장 심하게 못 박는 것은 가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밥 먹듯이 가출합니다. 찾아 놓으면 달아나고, 데려다 놓으면 가출합니다. 날마다 주님과 숨바꼭질합니다. 누가복음의 잃은 양의 비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다 그 비유의 주인공입니다. 올해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린 주님의 뒤를 제대로 따라갑시다. 선한 목자는 오직 한 분 주님입니다. 다른 이는 다 도둑이요 강도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 만을 열심히 좇는 착한 양, 좋은 양으로 사는 복된 푸른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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