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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1214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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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호 6: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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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힘써 여호와를 알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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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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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7세기 프랑스의 볼테르라고 하는 오만방자한 사상가요 작가가 있었습니다. 볼테르는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종교에 대한 비판이 신랄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웠습니다. 그는 공공연히 성경을 죽은 책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백년 후면 박물관에나 가야 성경을 만나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백년 후에 파리에 있는 볼테르의 생가가 프랑스 성서공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거기에서 성경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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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여러분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도 읽지 않으면 볼테르가 말한 대로 죽은 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 같으면 2000년 전, 구약 같으면 3500년 전의 고전일 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읽고 공부해야 살아있는 생명의 책입니다. 어느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저거 누구 책이야?’ ‘하나님 책이야.’ ‘하나님 책이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지 왜 읽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갖고 있어?’ 성경은 장서용이 아닙니다. 성경의 불가사의가 무엇일까요? 유사 이래 성경만큼 많이 제작되고 보급되고 판매된 책은 없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연 6억 권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런데 성경만큼 안 읽는 책도 없습니다. 아니 읽지도 않을 책을 왜 그렇게 많이 제작하고 구입합니까? 교회에 나올 때는 누구나 심장 가까이 들고 나오는 책입니다. 믿는 사람이 교회생활 하는 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이기에 구입은 하지만 읽지는 않습니다. 읽으면 따분하고 잠 오니까 불면증에 걸린 사람이 가끔 읽기도 합니다. 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구약 창세기나 신약의 마태복음도 한 번 안 읽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10명 중 9명이 넘는다는 통계 수치가 있습니다. 성경은 보고 듣고 공부해야 비로소 내 영혼에 양식이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아무리 심장 가까이 들고만 다니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죽은 책일 뿐입니다. 화석화된 고전일 뿐입니다. 물론 설교자도 성경의 내용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어느 설교자가 늘 앞자리에 앉아서 졸고 계신 할머니 때문에 마음이 언짢아 예배시간에 공개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할머니, 왜 설교시간마다 졸고 계십니까?’ 졸고 계시던 할머니가 ‘목사님, 여기 앉아서 그 설교 들어보세요.’ 저는 주무셔도 왜 자냐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겉돌기만 합니다. 성경을 보지 않으면서 들고만 다니고, 설교를 듣지만 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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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왜 우리가 성경을 보고 듣고 공부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으로 소개한 말씀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3절을 보니,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합니다. 왜냐면 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얼마나 기절초풍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제사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만 한 번 드려주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줄 압니다. 헌금만 한 번 드리면 좋아하실 줄 압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하나님 당신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은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입니다. 절대 맹목적이거나 형식적인 제사행위가 아닙니다. 성경은 절대 우리에게 맹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문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고 나서 제사를 드리라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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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는 의식이나 제사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 보며 하나님 알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의식에 한 번 참여하는 것으로 한 주간의 신앙생활을 때우려고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게 미신입니다. 원래 미신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자기 소원만 있습니다. 미신이나 무속에는 치성만 있습니다. 주문만 있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령님께 비나이다.’ 여기에 나오는 천지신령은 온갖 신을 다 의미합니다. 누구든 좋으니 아무튼 내 소원만 들어달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소원이 중요합니다. 송구영신예배 드리고 곧장 동해 바다에 가서 일출 보면서 빕니다. 중요한 것은 내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미신의 본질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알라딘의 램프입니다.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르면 마왕이 나와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루어 줍니다. 알라딘이 마왕의 능력을 이용해 자기의 소원을 이룹니다. 미신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말씀이 없고 내 소원만, 치성만 있습니다. 그게 무속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옛날에 미신 섬기던 가락이 남아서 그런지 기독교 신앙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내 소원을 들어주는 분쯤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구원이 무엇인지, 거룩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빙자한 미신입니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기독교를 반지성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알고 믿으려 하지 말고 무조건 믿다가 보면 다 이해되고 납득이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무식하게 믿는 게 상책이라고 합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사기입니다. 전에는 부흥회나 기도원에 가면,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믿습니다를 100번 하라고 했습니다. 100번 믿는다고 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다 믿어집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최면, 자기 암시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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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것에 근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성경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지성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 하나님의 지성의 형상을 닮은 지성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지적인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게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이웃과의 대인관계도 지성적이기를 바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지성적이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먼저일까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먼저입니까? 지식이 먼저입니다. 지식이 믿음이나 사랑보다 먼저입니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라는 신학자는 믿음은 신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떨 때 신뢰합니까? 상대를 알 때 신뢰합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신뢰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상대를 모르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믿음도 다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지식이 믿음보다 사랑보다 먼저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내 믿음을 고백하기 이전에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고 깊이 깨달았을 때 우리가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모합니다. 이단에 미혹당하는 사람이 다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가슴만 뜨거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이단의 타겟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절대 미혹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황당한 거짓 주장에 어처구니없어 합니다. 어떻게 이단들이 주장하는 게 저리도 황당한데 저기에 넘어갈까 싶습니다. 모르니까 넘어가는 겁니다. 아니까 안 넘어가는 겁니다. 모르는 사람은 넘어가서 패가망신하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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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호세아는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고 합니다(호 4:6).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누구나 망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당시 유다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다 망하는도다’며 안타까워한 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도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사랑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누구도 흥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도 주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성적인 하나님, 지식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그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에 지성적이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주님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겠습니까. 주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은 주님이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요 지식의 종교입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공부하여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신뢰하는 종교입니다. 그러한 말씀 앞에서 결단하고 순종하는 종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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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성탄절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성육신하시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은 말씀의 화신이신 주님을 감격적으로 뵙고 그분을 깨닫는 말씀의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깨닫는 성서주일이 되시고, 대강절이 되기를 빕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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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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