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30m 나를 보내사(사 61:1-3)대강절 첫째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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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30m
사 61:1-3
나를 보내사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말합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까지 대강 살아도 된다는 게 아닙니다. 라틴말로는 Adventus로, 영어로는 Advent 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하며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왜 대강절입니까? 왜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기다리는 자를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우연히 성탄하실 주님을 뵐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만을 용케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해마다 성탄하시지만, 해마다 성탄하시는 주님을 우리 인생 모두가 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된 자, 자신을 비워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자리를 예비한 자에게만 오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감격으로 주님의 성탄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성탄절은 2000여 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성탄을 회고하고 기념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해마다 새롭게 내 안에 성탄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는 실존적인 사건입니다. 대강절을 통해 착실히 준비하셔서 올해도 꼭 주님의 성탄을 뜨겁게 체험하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빕니다.
올해도 준비한 사람에게 베푸실 주님의 복을 소개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성탄하실 주님의 진술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이것이 올해 우리 가운데 성탄하실 주님의 미션 제1호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본문이 약 2700년 전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인데, 그때에도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실 일이 마음 상한 자를 고쳐주시는 일입니다. 이사야 1장 5절 이하입니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사야 시대 많은 사람의 온 몸과 마음이 이토록 만신상치였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어디서도 싸매거나 고침을 받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시면 그런 사람부터 우선적으로 어루만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토록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2700여 년 전의 이사야 시대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우리 가운데 멀쩡한 사람이 있습니까? 태연한 표정을 짓고 시침을 떼어서 그렇지 화장만 지우면 우리 아픔과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소리를 속으로 삼켜서 그렇지 우리가 다 끙끙 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어디서도 치료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겉만 멀쩡했지 속은 다 상처투성이입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교우들 때문에 우리는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상처 받고 우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도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면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우선적으로 주님이 마음의 상처 있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신다고 합니다. 1절을 보면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했는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식입니까? 이래서 우리는 올해도 주님을 기다려야 하고, 실존적으로 성탄하실 주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난 마음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42장 3절을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고 합니다. 갈대는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성가신 풀인데 더구나 그게 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상한 갈대가 얼마나 쓸모가 없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그 상한 갈대마저도 꺾지 않고 싸매신다고 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약한 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소외시키고 배제합니다. 적자생존의 논리를 따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아무리 오래된 마음의 지병도 깨끗이 낫게 하십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마음 상한 자들이 다 고침을 받아서 모두가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오시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십니다.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이 앗수르로 잡혀가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선포하실 때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수탈과 억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라는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것의 포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당당하게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우리 중 몇 명이나 명실상부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 가족 가운데 병마의 포로가 되어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 많습니다. 이게 다 우리의 아픔이고 분열이고 모순입니다. 분명 신분은 자유인인데, 현실은 아직도 그렇지 못합니다. 자유인인데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이율배반이고 모순이며 분열입니다. 우리는 내 의지, 노력, 힘으로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없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꼭 만나야 할 이유는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면 우리가 자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부디 주님을 제대로 만납시다. 어떤 분은 37년째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데 아직도 못 끊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번 금연학교에까지 다녀왔는데도 담배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자유케 하시면 담배로부터, 술로부터, 도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도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 비워야 합니다.
또한 주님이 오시면 슬픈 자를 위로하십니다.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으로 슬픈 존재입니다. 우리는 다 기쁨 속에서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늘 눈물과 한숨입니다. 단 하루, 단 한 순간도 근심 없이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어디서도 위로 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슬퍼도 위로 받을 데가 있으면 견딜 만한데, 갈수록 그럴 사정이 안 된다는 게 절망스럽습니다. 과연 누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요? 남편? 아내? 자식? 친구? 직장 동료? 구역 식구? 목사? 그들이 내게 정말 힘이 되고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나를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는 장본인들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주님이 오시면, 주님이 올해도 새롭게 성탄하시면 나의 모든 슬픔을 위로해 주신다고 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고, 근심을 찬송으로 바꿔주신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근심 대신에 찬송을 부르게 하십니다.
제가 가끔 여러분께 불러드리는 복음성가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올해도 성탄하실 주님을 꼭 만나셔서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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