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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3m 기적은 언제?(행 12:1-10)

20141123m

행 12:1-10

기적은 언제?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기적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인과율만이 현실의 전부를 믿는 사람들의 미신입니다. 초자연적 현상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에는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선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이며 자존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행위는 모든 게 초자연적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가 필요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초자연적이기에 우리 이성으로 용납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행하시는 사역이 계시입니다.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40편 5절은 하나님께는 기적도 많고 우리를 향한 생각도 많다고 했습니다. 기적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는 당연히 기적이 많으십니다. 그런데도 그 기적을 남발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생각이 깊으셔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적이 없거나 기적이 궁해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이 드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 자체가 기적임에도 우리를 향한 생각이 깊으셔서 함부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충분히 숙고하셔서 우리에게 덕이 되고 복이 된다고 판단하실 때 드물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건인 기적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우리의 그릇이 준비되었을 때, 기적이 기적답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 때, 우리가 기적의 희생자가 안 된다고 판단하실 때, 기적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지 않겠다 생각하실 때, 비로소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게 바로 시편 40편 5절의 말씀의 뜻입니다. 아무리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의 기적이라도 그걸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에겐 재앙이 됩니다. 기적 때문에 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적을 신중하게 베푸십니다.


오늘 본문도 기적 얘깁니다. 헤롯왕이 야고보 사도를 살해했습니다. 헤롯왕은 야고보 사도에게 개인적 감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당시는 유대교가 초대 기독교를 눈엣 가시처럼 생각하던 때라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헤롯왕이 야고보 사도를 죽여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의 중추적 리더였습니다. 그런 인물을 정략적으로 살해하니까 유대인들이 헤롯을 지지한 겁니다. 이때 이미 스데반은 순교한 뒤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오고, 야고보의 순교는 12장입니다. 사도로서 최초의 순교자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요한은 사도 가운데서 유일하게 순교당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살해하니 유대인이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전격 체포를 합니다. 마침 그때가 유월절이어서 감옥에 가둬두었는데, 그날 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탈옥시키는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그 기적은 우선 처형 전날 밤에 발생했습니다. 본문 6-7절입니다.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한 그 전날 밤에 천사가 베드로가 갇힌 옥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밤이 지나고 날만 새면 끌려나가 참수를 당할 판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기적은 언제나 이렇게 일어납니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발생합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최후의 순간에 거짓말처럼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지켜보십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밤에 비로소 극적으로 비상 개입을 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순간에 사태를 역전시키십니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기적만이 유일한 대안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도 그랬습니다. 사면초가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양쪽은 험준한 바위산입니다. 뒤편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그들 앞에는 검붉은 홍해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런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습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들 앞에 나서서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행하시는 기적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팡이를 들자 홍해바다가 쩍 갈라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그랬습니다. 목을 따기 0.1초 전에 다급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의 목을 따지 말아라.’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도 그랬습니다. 여리고성은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무너졌습니다. 여섯 바퀴째에는 어디에도 무너질 기색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기적은 막판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적은 최후의 순간까지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발생하지 않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을 만나보지 못합니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승산이 없다 싶으면 체념하고 포기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기적이 없습니다. 아무런 조짐이 없어도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기적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에게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끝가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적은 마지막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해서입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포기하고 체념합니다. 너무 쉽게 희망을 접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마지막날 밤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모든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당시 베드로의 사정을 보십시오. 감옥에 갇힌 채 양쪽에 군사 한 명씩 같이 누웠습니다. 양쪽 군사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인 겁니다. 6절이 바로 그 뜻입니다. 감옥 밖에도 경비가 삼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4인 1조로 4패, 곧 16명이 지킨 겁니다. 거기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날이 밝으면 꼼짝없이 끌려가서 목 베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적인 절망이 하나님께는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시간적으로는 최후 순간이고 환경적으로는 불가능한 조건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반전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적은 바로 천 길 벼랑 끝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좀처럼 희망을 접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을 고대하며 마지막 지점까지 가지 못합니다. 이미 훨씬 전에 자포자기하고 체념하며 백기를 들고 맙니다. 다윗은 얼마나 자주 땅 끝까지 내몰렸는지 모릅니다. 시편 61편 2절입니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기적으로 구하십니다. 시편에는 다윗이 땅 끝에서 기도한 게 많이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기적같이 구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천 길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해도 포기하지 마시고 다윗처럼 그 땅 끝에서 기도하십시오. 그 지점이 비로 기적이 발생하는 자리입니다. 


기적은 갑자기 일어납니다. 기적에는 예고가 없습니다. 전조가 없습니다. 7절을 다시 보시면,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홀연히는 갑자기 나타났다는 겁니다. 기적도 마찬가집니다. 지진이나 화산은 예고가 있습니다. 전조라는 게 있습니다. 사전에 어떤 징후가 포착됩니다. 하다못해 짐승들이 떼 지어 나오기도 합니다. 폼페이는 79년에 화산재에 매몰되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주후 63년부터 전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즉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전조가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홀연히 일어납니다. 만일 사전에 무슨 전조가 있었다면 베드로가 자지 않고 깨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내일 죽는데 잠자고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인지 무심한 것인지 모를 겁니다. 천사가 말로 깨워도 안 일어나니까 발로 차서 깨웠습니다. 베드로도 그날 밤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졸지에 홀연히 아무런 징후 없이 기적이 발생하자 한순간에 모든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7절 이하를 보니, 베드로는 쇠사슬이 끊어지고, 옥문이 열리고, 천사의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나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베드로는 큰 길에 서 있었던 겁니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아침이면 참수당할 사형수의 몸이었는데, 풀려났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적은 예고 없이 홀연히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적은 결코 우연은 아닙니다. 요행이 아닙니다. 행운이 아닙니다. 기적의 정체는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본문 이후에 이어지는 11-12절입니다.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베드로가 헤롯에게 잡혀가 옥에 갇히자 그 순간부터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모여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천사의 손에 이끌려 탈옥한 후에 곧장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집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늦은 밤에도 그 집 다락방에 모여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겁니다. 기도가 기적을 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기도의 결과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오병이어를 손에 받아 들고도 하늘을 향해 기도하셨습니다. 엘리야도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기도할 때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정말 기적을 바라십니까? 기적만이 절대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기도하십시오. 기적은 기도의 응답이지 거저 주어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부디 기도함으로 기도의 진수뿐만 아니라 기적을 체험하심으로 여러분의 당면한 과제를 통렬히 해결하는 복된 기회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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