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겨울 채비



수능 추위를 시작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거리의 옷차림도 불과 한 주 만에 많이 두꺼워졌습니다. 하기야 절기상으로는 살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 벌써 어제였습니다. 저도 요즘 새벽기도회에 나올 때는 오리털 점퍼에 목도리 가죽장갑까지, 누가 봐도 이미 영락없는 한겨울 행색입니다. 지난 주도 다들 김장으로 바빴을테지만 금주도 김장 일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금주 말 내주 초까지 김장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웰빙촌의 배추가 속이 좀 덜 찬 듯하고 무도 살이 덜 오른 듯해 권사님들한테 잔소리를 좀 듣게 생겼지만 갓과 쪽파는 그런대로 된 것 같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비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롬 13:11-14).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무들은 단풍이 든 화려한 잎사귀들을 다 털어버립니다. 그것은 자양분을 본체로 빨아들이는 내실화의 작업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죽은 듯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나무도 봄이 되면 다시 그 두꺼운 목피를 뚫고 마치 기적과도 같은 새 생명의 움을 틔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늦가을 나무들이 서풍을 이용해 자기 스스로는 떨쳐버릴 수 없는 낡은 잎들을 깨끗이 날려버리듯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의 삶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우리는 늘 탐욕의 노예가 되어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참 의미와 가치를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변화 없는 일상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눈을 언제나 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삶에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면 그동안은 전혀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내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도 깊이 깨닫게 됩니다. 특히 바울은 그럴 때 무엇보다도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의 이 권면은 허영과 안일에 빠진 그릇된 삶의 자세를 늦가을 찬바람에 깨끗이 날려 보내고 가난한 마음,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겸허한 마음으로 박두한 겨울을 맞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결코 소극적인 금령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놓아버리고 내려놓으라는 것은 사실 보다 더 튼튼한 것, 보다 더 귀하고 참된 것을 붙잡게 하기 위해섭니다.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바울이 권하는 겨울 채비의 초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당합니다. 위기는 예고도 없이 순간순간 우리의 삶을 엄습합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이것 만큼은 ... !>하는 <절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그 무엇, 그게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성큼 다가온 이 겨울의 문턱에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겨울 채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낮이라면 해지기 직전의 짙은 황혼이요 가을이라면 벌써 입동과 소설이 지난 만추지절, 김장도 중요하고 오리털 점퍼도  필요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일이 더욱 절실해 보입니다. 


부디 그리스도로 옷 입는 최선의 겨우살이 준비로 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맞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