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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더불어’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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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lt;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gt;(요 4:38). 이것은 지금의 내 삶에 과연 어떤 것 위에 세워졌으며 내가 내 삶에 대해 무엇을 감사해야 옳은가를 가르치신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흔히 우리는 내가 심은 것, 내가 노력한 것의 결실을 내 손으로 수확할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반면 내가 애쓴 것을 내 손으로 추수하지 못할 때는 몹시 허탈해 하고 속상해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lt;내가 심은 것은 반드시 내가 추수해야 한다&gt;는 이기주의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에게는 오직 소유의 기쁨뿐 &lt;더불어&gt;의 기쁨은 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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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거미가 제 몸에서 나온 점액으로 거미줄을 치고 거기에 걸려드는 먹잇감을 추수하는 보람으로 살 듯 그런 사람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 친구도 사랑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수확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과연 참기쁨이 있을까요? 그에게는 오늘의 처지와 성공이 다 자기 공로, 자기 노력의 대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하등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심정이 없는데도 과연 기쁨과 보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삶의 기쁨과 감격이란 감사에서 옵니다. 또 감사와 감격이란 오직 내 삶이 은총이요 은혜라는 느낌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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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그런데 거둬들이는 기쁨에 비해 내어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심는 자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홀로의 기쁨이 아니라 &lt;더불어&gt;의 기쁨입니다. &lt;뿌리는 이와 거두는 이가 함께 즐거워하는&gt;(요 4:36) 그런 기쁨입니다. 내가 심은 것을 네가 거두면서 기뻐하는 그 기쁨에 내가 참여하는 것은 확실히 삶의 놀라운 환희자 감격입니다. 그 기쁨은 소유에 의한 기쁨보다는 공존의 기쁨입니다. 내가 심고 내가 거두겠다는 곳에는 &lt;너&gt;의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심은 것을 네가 거두는 것을 기뻐하는 데는 심고 거두는 그 자체보다도 &lt;너&gt;를 만나는 공존의 기쁨이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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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그것은 반드시 주는 것에서만 오는 기쁨은 아닙니다. &lt;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다&gt;는 것은 나 역시도 거저 받았다는 것이고 내가 오늘 여기에 있음은 나를 있게 한 손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삶이 감사한 것이고 또 그렇게 받은 자로서의 감격 때문에 나도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거두는 것을 목표로 삼거나 권리로 생각지 않습니다. 아니, 심는 일을 내 할 일의 전부로 알고 심습니다. 심는 일에서 이미 거두는 자의 기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는 언제나 추수 때만 있습니다. 넉 달 후가 아니라 지금이 바로 추수할 때입니다. 그에게는 추수의 때와 뿌릴 때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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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삶의 감격이 없습니다. &lt;나는 당신이 심은 것을 거두고 당신은 내가 심은 것을 거두고!&gt;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심지어는 교회까지도 &lt;너 심은 것은 반드시 내가 거두되 수백, 수천 배까지라도 수확해야겠다&gt;는 데서 세상이 더욱 불모화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내 것, 내 권리만 주장하기 때문에 거두려는 자들만 있지 심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와 사기꾼들이 범람하고 오늘 심어 오늘 거두겠다는 전시 행정과 공짜 문화를 만연시킨 무책임한 복지 공약이 사회 안전망의 파탄을 부르고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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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요즘은 가진 자들도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lt;더불어&gt;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즐기기에는 양극화된 다른 한쪽의 아우성과 원성이 너무 크고 소외 계층의 불행이 내 삶에 긴 암영을 던지므로 점점 높이 쌓은 성 안에 갇혀 나 홀로 외롭습니다. 잘 산다는 것, 기쁨과 보람 속에서 산다는 것은 곧 &lt;더불어&gt;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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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모쪼록 &lt;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는&gt; 상생과 공존의 삶을 생각하는 복된 추수감사절 되시기를 빕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