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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41109n</p>
<!-- paragraph:p0002 -->
<p class="p1">시 150:1-6</p>
<!-- paragraph:p0003 -->
<p class="p1">할렐루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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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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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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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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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 할렐루야로 인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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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본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매우 좋은 뜻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입에 담고 있어야 할 말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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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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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808년 6월 18일일 겁니다. 하이든이 천지창조를 작곡해 비엔나 대극장에서 초연하던 날입니다. 비엔나필이 연주를 했는데 이때는 이미 하이든이 나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대극장 2층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지켜봤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만장의 기립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모두가 노 작곡가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이든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여러분 내게 박수를 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라고 하고서 쓰러졌습니다. 더는 일어나지 못하고 1년간 누워있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이든이 유언으로 남긴 말도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 곡이 연주될 때마다 나를 생각하지 말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lt;하나님을 찬양하라&gt;가 하이든의 비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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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찬양은 하나님을 높이고 기쁘시게 하는 노래요, 감사의 고백이고, 우리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입이 아니라 영혼으로 부르는 겁니다. 찬양은 다 아는 곡을 반복해 불러도 싫증이 안 납니다. 찬양은 힘차게 부르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맛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순간입니다. 성경말씀은 어느 대목을 봐도 은혜가 되듯이 찬양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런 감동 없이 건성으로 찬양하는 것은 찬양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영혼으로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기에 힘이 생기고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시큰둥하게 찬양하면 그것은 죄 짓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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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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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루터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깊이 잠기고 우리 입술이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지 않는 한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찬양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최후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찬양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소홀히 할 수 없냐면, 한시적이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이 땅 뿐만 아니라 천국 가서도 찬양해야 합니다. 믿음도 폐하고 소망도 폐합니다. 천국 가기까지만 필요합니다. 설교도 폐합니다. 목사는 천국 가면 실직자입니다. 천국에는 찬양만 있습니다. 계시록 4장 이후를 보면 천국의 예배 장면이 소개됩니다. 다 찬양에서 시작해 찬양으로 끝납니다. 성경봉독도 설교도 없습니다. 24장로들의 찬양, 천군천사들의 찬양, 흰 옷 입은 무리들의 찬양만 있습니다. 다 폐하지만 사랑과 찬양만 영원합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 뭘 하겠습니까?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겹지 않습니다. 하여간 천국 가서도 찬양은 계속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성도들이 찬양하면 가장 행복해 하십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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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그러면 어떻게 찬양을 밤낮으로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제대로 찬양을 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5장 18절이하입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같은 찬양이야말로 성령충만의 결과라는 뜻입니다. 성령충만해야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세상 노래는 음악적 소양이 필요하지만, 찬양은 성령충만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우리에게서 은혜가 고갈되면, 제일 먼저 찬양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습니다. 찬양은 성령충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제일 먼저 기독자의 입에서 찬양이 실종됩니다. 그리고 그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면 저절로 입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찬송을 잃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찬송이 풍성해집니다. 내 입에 찬송이 풍성해지면 내 삶이 덜 고단합니다. 신앙생활이 덜 힘듭니다. 아무리 삶이 고되고 어려워도 입에 찬송이 살아있으면 그 사람의 삶은 희망이 있습니다. 찬송이 사라지면 정말 마음이 황폐해지고 영혼이 삭막해집니다. 노래가 없는 삶, 상상이 되십니까? 노래가 사라지면 살벌해서 못 살아갈 겁니다. 찬양이 없으면 신앙생활 못 할 겁니다. 찬양이 내 입에서 실종되면 영적 삶은 불가능해질 겁니다. 그래서 찬송은 성령충만의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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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8 -->
<p class="p1">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참회시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12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오전예배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성도가 범죄하면 구원을 잃지는 않습니다. 다만 구원의 즐거움을 잃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빼앗아 가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범죄하면 구원의 즐거움을 못 느낍니다. 그래서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잃은 겁니다. 다시 말해 찬양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회개하며 찬양의 즐거움을 내게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이어지는 14절 이하입니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범죄하면 찬송을 잃게 되기에 찬양을 하게 해달라고 절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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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0 -->
<p class="p1">찬양은 언제합니까? 감리교의 창설자는 요한 웨슬레입니다. 웨슬레는 선교여행을 위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가운데 큰 풍랑을 만납니다. 수백 명의 승객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웨슬레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그 위협적인 풍랑과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을 뚫고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웨슬레가 깜짝 놀랐습니다. 찬송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약 20명 정도의 모라비안(독일 경건주의의 한 분파) 교도가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디에도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웨슬레는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불쌍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거기서 무릎 꿇고 통회합니다. 자기를 여기서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살인적인 풍랑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하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와 찬양에서 웨슬레는 새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선교하러 가면 뭐합니까? 풍랑이는 갑판에서 비명만 지를 줄 알았지 찬송하지 못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기도와 찬송은 동시적입니까? 따로 합니까? 찬송은 즐겁고 기쁠 때 합니다. 기도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찬송과 기도를 같이 한 사건이 나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잡혀 들어가 매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힙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묶인 채 큰 소리로 찬양하다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천지가 흔들리며 옥문이 활짝 열리고, 채워졌던 착고가 다 풀어졌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찬송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등은 채찍 맞아 너덜너덜한데 찬송을 부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방의 죄수들이 다 들릴 만큼 큰소리로 두 사람이 찬송을 부른 겁니다. 이게 신자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탄식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찬송을 크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신자입니다. 찬송과 기도는 전천후여야 합니다. 지하 감방에 갇혀 힘차게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는데, 갑자기 감방의 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때리고 가둔 간수장이 그 둘 앞에 무릎 꿇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느냐’고 합니다. 그때 저 유명한 말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그날 밤 간수의 모든 가족이 세례를 받습니다. 그 집이 빌립보교회가 됩니다.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이런 기적은 바울과 실라만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이런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혹시 캄캄한 밤이요, 옥에 갇혔고, 수족이 채워져 있으며, 맞아서 터진 상처가 쓰리고 아프십니까?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하고 찬양하십시오. 낙심천만해서 신음하고 한숨을 토할 게 아니라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반드시 우리 앞에서 지진이 일어납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환경이 파괴적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환경과 조건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획기적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불과 1초 전만 해도 수족이 착고에 채워져 있었는데, 갑자기 채워졌던 게 다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으며 나를 때리고 가둔 자가 내 앞에 엎드렸습니다. 우리는 옥에 갇히면 신세타령하고  한숨 짓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찬양하면 길이 보입니다. 역대하 20장 21절 이하입니다.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치러 왔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엉뚱하게도 성가대를 조직합니다. 이스라엘 제일 앞에서 찬양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암몬과 모압이 자기들끼리 싸웠다고 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찬양이 활발하던 시대는 다윗시대였습니다. 다윗은 찬양 전문가였습니다. 이때는 찬양대가 6천 명이 넘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온갖 악기가 다 동원됐습니다. 요즘 찬양은 옛날보다 보수적입니다. 아득한 옛날에는 춤추고 손뼉치고 온갖 악기 다 동원해 찬양했습니다. 아직도 드럼을 못 치게 하는 교회가 아직도 있는데, 다윗 시대는 온갖 악기 다 동원해 찬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다윗을 못 잊습니다. 가장 행복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다윗왕국을 재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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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찬양하며 사십시다. 시편은 하루에 7번 찬양하고, 113편은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도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게 시편의 결론입니다. 숨 떨어지기 전에는 여호와 앞에 찬양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제일 되는 본분입니다. 찬양이 풍성하면 그 교회는 풍성한 교회입니다. 그 최일선에 성가대원이 나서있습니다. 그러니 성가대원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찬양을 통해 은혜와 복을 누리시고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원합니다.</p>
<!-- paragraph:p0025 -->
<p class="p1"><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 paragraph:p0027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C5otcHLeZbM"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