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인생 역정



깊어가는 가을의 서정에 울컥 눈물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듯 몹시 감성이 시린 요즘입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누구도 인생의 온갖 굴곡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어서 때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 옴쭉달싹도 못 하는 참담한 곤경에 처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곧잘 자신의 한계와 무력감을 절감하며 깊은 상실감에 빠지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덫에 걸린 기분이며 몸부림할수록 더욱 죄어드는 올무 같은 낭패감입니다.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구석만 없다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고 증발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번민하며 신음하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분노의 상처와 아픔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해 폐인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긴 해도 평생을 절룩거리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인생 역정은 그런 우리들에게 비극의 색조를 띤 삶의 아픈 시간들의 의미를 두고두고 되새기게 하는 값진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 나선 요셉이 도단에 가서야 겨우 만나게 된 형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혈육이 아니라 그를 해치는 무자비한 악당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들판을 헤매며 애써 형들을 찾아 온 요셉을 죽이기 위해 깊은 구덩이에 던집니다. 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채색옷이 벗겨지고 졸지에 떠밀린 벼랑 끝 구덩이는 분노의 발톱만을 내밀어 그의 공허한 심장을 할퀴고 있었습니다. 죽음 같은 고독이 짓누르고 희망의 촛불은 가물가물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무엇도 그를 구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뼛속까지 느끼고 깨닫는 순간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보다 정직하게, 진솔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버려진 자신의 모습에 마냥 슬퍼하고 비관만 하는 사람은 결코 내 바로 곁에 계신 하나님조차 만나볼 수 없습니다. 길을 잃고 해 저문 들판을 이리저리 헤매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가 실은 이전의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과 결별하고 하나님을 만나 보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요셉만 해도 그런 긴 터널과 맨 밑바닥을 기는 모진 역정이 없었던들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해도 그의 진국 같은 신앙 인품은 가히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겜 광야를 헤매다 도단의 구덩이에 빠져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인 그의 막장 체험이 두고두고 그의 삶을 결정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됐을 것입니다. 후에 요셉이 형들에게 고백한 말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7).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구덩이에 던져지고 상인들에게 팔린 반인륜적인 사건이 평생 그의 한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출발의 발판이 된 사실을 증언하는 대목입니다. 지난 고통의 시간은 쓰리고 아팠지만 그러나 그 모진 세월들이 자신을 이렇듯 성장시키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다 깊이 사색하게 했다는 진술입니다. 


살아가다 때로 자신이 찬바람 부는 들녘에 홀로 남겨졌다고, 혹은 텅 빈 들판을 헤매다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너무 비관하거나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이제 곧 그런 시련이 없다면 결코 만나지 못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게 되실 겁니다. 분노와 슬픔의 껍질에서 해방되어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생명의 기운을 내 영혼 깊숙이 받아들이는 복된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가을빛 짙어가는 이 만추지절, 한 때의  우리의 아픔과 고독이 훗날 언젠가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시간의 열매가 되어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되돌아오게 되길 기원하며 이 아침에도 평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