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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하나님의 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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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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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고대 그리스는 비극(悲劇)으로 유명합니다. 원형의 노천극장은 무대가 관중석 한가운데 배치되어 극중 배우들의 연기가 절정에 이르면 관객과 배우, 무대와 객석의 한계가 사라지고 마침내 모두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슬픔에 흠뻑 빠집니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울기 위해 그곳에 모입니다. 연출된 비극의 장에서 그렇게 실컷 울고 나면 마치 체증으로 속이 메슥메슥하던 사람이 왈칵 토해버린 것처럼 카타르시스가 되어 모두가 마음의 희열을 안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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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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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비극에 반해 희극(喜劇)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극과 희극은 형식상의 구분일 뿐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쁨이 고조되면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습니다. 상황이 너무 기가 막히고 처절하면 차라리 껄껄 웃습니다. 이렇듯 웃음이 때로는 울음보다 더 진한 슬픔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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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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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아브라함의 이야기에 보면 웃음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lt;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gt;(창 17:17). 사라도 역시 그 말을 듣고 &lt;속으로 웃으며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그런 일이 있으리요&gt;(창 18:12)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황당한 말씀으로 자신들을 웃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웃음에는 인간의 한계성에 대한 진한 슬픔과 체념이 깔려 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이 &lt;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gt;(창 18:13-14)며 나무라시는데 &lt;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gt;(창 18:15)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슬픔을 웃음으로 대신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그 인간적인 한계를 깨뜨리셨습니다. 사라가 정말 임신하여 &lt;웃음&gt;이란 뜻의 아들 이삭을 낳았고 부부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함께 웃게 된 것입니다. &lt;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gt;(창 21:6).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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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시편에는 이런 노래도 나옵니다. &lt;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gt;(시 2:1이하). 세상 나라들 민족들이 하나님의 의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군왕들과 관원들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 대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웃으셨다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웃겼기 때문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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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웃고 계시는 하나님, 그것은 역사의 부조리에 고통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희망인 동시에 불의한 자들에게는 무서운 하나님의 경고라는 것이 이 모순에 찬 세상의 종국과 함께 새 역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믿는 자들의 종말론적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 때는 곧 하나님이 웃고 계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순간처럼 무서운 때도 없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세력들이 온 천하를 다 삼킬 듯 위협하며 득세해도 웃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므로 우리 역시 웃을 수 있음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시편 37편은 &lt;악을 도모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gt; 했고, &lt;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gt;, &lt;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gt;며 &lt;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니 반드시 그들의 날이 다가옴을 볼 것&gt;이라고 하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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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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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한 해의 결산을 앞둔 이 가을, 깊은 회개와 자성으로 자신을 살피며 하나님의 비웃음이 아닌 은혜와 축복으로 풍성한 11월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