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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6m 무신론 시대의 하나님과 개혁(창 1:1)

20141026m

창 1:1

무신론 시대의 하나님과 개혁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즘 세계교회의 가장 큰 고민은 무신론의 도전과 확산입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의 무신론은 매우 노골적이고 전투적입니다.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가 선두주자입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책을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책을 써놓고 지난 2011년에 식도암으로 죽었습니다. 대단한 독설가요 무신론의 전사였습니다. 미국인 무신론자협회 공동 대표인 애니 데일러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신론을 끊임없이 선동하고 기독교를 맹비난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대 무신론의 아버지는 19세기 독일사람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입니다. 그는 1804년에 태어나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고 개신교에서 자란 신자였습니다. 그는 김나지움 때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를 마스터한 수재였습니다. 대학도 하이델베르크대학 신학부에 갔는데 거기서 운명의 헤겔철학을 만나 완전히 매료를 당합니다. 아예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떠나 당시 헤겔이 있던 베를린대학으로 옮겨 헤겔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습니다. 신학도에서 철학도로 바뀐 겁니다. 거기를 졸업하고 남부 에어랑엔대학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에서 사강사 노릇을 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무신론 전도사가 됩니다.

 

기독교의 경전이 성경이라면 무신론자들의 바이블은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Das Wesen der Religion)입니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본질>이란 책도 썼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합니다만,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은 첫 문장이 “태초에 사람이 하나님을 창조하니라”고 적었습니다.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허무의 존재라는 겁니다. 인간이 신이라고 믿는 것을 투사(projection)해 놓은 것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제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초월의 욕구가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를 만들어 초월세계에 투사해 놓고 그 허상을 신으로 섬김으로써 자기 초월을 꾀하는 실존적 행위가 기독교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종교의 본질이자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로 고안해낸 존재가 신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포이어바흐를 계승한 사람이 칼 막스와 엥겔스입니다. 막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들로 하여금 신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헌실에 대한 적극적인 혁명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아편이 바로 종교라는 겁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종교, 곧 기독교는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투쟁의지를 끊는다는 겁니다. 종교로는 절대 자기극복이 안 되고 오직 물리적인 공산혁명만이 인간사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혁명을 부르짖은 겁니다. 막스는 유태인입니다. 그 또한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기독교 고등학교를 나왔고 교회에서 기독교식 결혼식도 올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자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입니다. 그도 유태인입니다. 그는 종교를 심리학적 착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포이어바흐의 투사이론을 심리학적으로 더 철저화한 것입니다. 원래는 인간이 스스로 신을 만들어 하늘에 앉혀 놨는데, 그게 정말 신인 것으로 착각하고 섬기고 있다는 겁니다. 우상 종교를 보십시오. 장인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신의 자리에 앉히는 순간 사람은 착각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만든 조잡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초월적인 존재로 착각하고 그 앞에서 절하고 예배한다는 겁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신도 그런 종류라는 겁니다. 신은 인간 심리의 착각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그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도 기독교 집안 출신입니다. 조부와 아버지가 목사였습니다. 별명이 아기 목사였습니다. 그만큼 성경에 해박하고 많이 암송한 사람입니다. 그는 목사가 되려고 공부하다가 극심한 회의주의자가 됩니다. 19세기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 그리고 그들의 계보를 잇는 리차드 도킨스입니다. 그의 책은 원제가 <하나님 망상>인데 우리말 제목으로는 <만들어진 신>입니다. 그는 19세기 포이어바흐의 논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신론의 틀은 기본적으로 포이어바흐에게서 왔습니다. 어째서 이런 무신론자들의 철학이 새삼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을까요? 우리의 책임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잘못 살고 있다는 겁니다. 니체가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했는데, 결국은 서구 기독교 문명에 대한 사망선언이지 기독교가 섬기는 인격적인 하나님 사망은 아니라는 게 다수 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바로 확인시켜주지 못하니까 기독교를 비웃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무시합니다. 이것이 비록 의식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신앙생활이 이런 결과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우리 누구도 이 엄중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온몸으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확인해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이 마음껏 조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전에는 종교개혁하면 주로 교회의 타락상을 고발하며 잘못된 제도나 교리를 혁파하였지만, 이제는 그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인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개혁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신앙과 삶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 따로 놉니다. 교회에서만 신앙생활하고, 교회를 나서면 전혀 다른 모습, 딴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적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혁교회 본래의 정신과 전통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개혁교회의 본래의 신념을 회복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로 돌아가는 겁니다. 장 캘뱅이 가장 강조하고 죽는 날까지도 관철하려고 혼신을 다했던 <그리스도 통치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주일날만 그리스도 통치를 받는 것으로는 안 되고, 주중에도 그리스도의 통치가 내 삶의 한복판을 관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칼빈이 말한 그리스도 통치 개념이자, 장로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종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주권은 우주적으로 관철되어야 합니다.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경제도 다 주님의 통치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해서 생지옥과 같은 세상이 되는 겁니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나 제 맘대로 살아가는 교회와 신앙에 대해 그리스도의 통치가 관철되게 하는 혁신운동입니다. 그리스도가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삶의 영역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통치가 관철되게 하는 투쟁이 종교개혁입니다. 개인의 심령이 주님의 통치 아래에 있지 않으면 내 안에 주님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회개하고 결단하는 게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가정에, 사회에, 교회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관철되도록 하는 게 개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는 열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게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 개념이 아니라 주권 개념입니다. 루터교는 두 왕국설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왕국과 세속 왕국입니다. 교회에만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면 됩니다. 세상 왕국은 세상에 맡겨 둡니다. 정교분리입니다. 이것은 루터교가 가르치는 교리이고, 개혁교회(장로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설을 가르칩니다.

 

우리 자신부터 개혁합시다. 내 삶의 전부를 주님의 통치 아래에 둡시다. 주님이 내 삶의 모든 영역을 관장하게 하십시다. 교회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모두 주님이 개입하게 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도 다 하나님이 통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관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기좋은 유토피아가 됩니다. 그 상태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개혁이고, 이 개혁의 선봉장들이 우리 신자들입니다. 종교개혁 497돌을 맞아 무신론의 시대를 다시 한 번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그런 세계로 변혁하고 개혁하는 일에 우리 모두 주역으로 나서기로 결단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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