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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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타락할 때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성직자의 급증과 교회나 사찰, 사원의 경쟁적인 신축 혹은 고급화 현상입니다. 고려시대 불교가 타락할 때는 고려 천지에 승려들이 들끓었고 명산마다 골짜기마다 다투어 사찰이 들어섰으며, 티베트의 라마불교가 타락할 때도 티베트의 남성 70%가 승려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세 가톨릭이 타락할 때도 온 유럽에 신부와 수녀들이 넘쳐났으며, 어디서나 금빛 찬란한 내부 장식의 성당들이 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가톨릭의 타락이 극에 달했던 16세기, 현재 바티칸 대성당으로 쓰이는 성베드로 성당을 짓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된 면죄부 판매가 종교개혁의 단초가 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홍수로 물난리가 나면 도리어 마실 물이 귀해져 고통당하듯 목사가 넘쳐나고 교회가 흐드러졌음에도 존경할 만한 목사, 다니고 싶은 교회를 찾기 힘들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오늘 우리들의 현실 아닙니까?
주님 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난장판이 된 예루살렘 성전의 실상을 목도하신 주님이 공생애 마지막 주간 첫날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의 집기를 둘러엎으시고 비둘기와 양을 몰아내시며 <너희가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의분을 터뜨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젊은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열렬한 지지를 보낸 반면 소위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분노로 몸을 떨며 이를 갈았습니다(마 21:15). 그들이 가장 반발하며 문제를 삼았던 것은 주님께 과연 성전을 정화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느냐?>(마 21:23)며 추궁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 주님의 행위는 분명 난동이었습니다. 난동이란 기존의 질서가 공인하지 않은 사람이 폭력적으로 어떤 일을 도발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전 관리인들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일개 시골 청년이 돌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성전을 숙정한 행위가 과연 옳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은 그래서 주님도 그들의 심문에 답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언제나 권위에 도전해 싸우신 분이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도 권위를 따지는 사람들에게 어떤 압도적 권위를 제시하기보다 도리어 뜬금없는 반문을 던지시며 응수하십니다. <나도 한 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느냐 사람에게서 왔느냐?> 주님의 이 질문이 결국은 그들을 유구무언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만약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그런데 왜 그를 믿지 않느냐는 비판을 면치 못할 테고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그를 예언자로 믿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될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럼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 말하지 않겠다>며 그 언쟁을 끝내고 마십니다.
권위란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 권위란 사회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종교에서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여간 구시대의 잔재인 모든 권위를 타파하자는 게 현대인들의 지상과제처럼 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권위주의의 상징인 부모나 선생, 정치인, 종교인들을 싸잡아 꼴통들이라며 혐오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셨던 주님도 분명 권위주의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분명 양자 간에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 난 권위>와 <하나님에게서 난 권위>를 구별하셨고, 세례 요한의 권위와 자신의 권위는 결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당시 주님과 세례 요한의 권위를 기존의 질서로 입증할 수 있었다면 그들 역시도 이미 낡은 질서에 속한 인물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공자는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간섭하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고 했지만, 주님은 오히려 이 세상 속에서는 그 어떤 지위도 없었기 때문에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현실에 항거하며 그 시대 전체의 방향을 물으실 수 있었습니다. 개혁의 주체는 기존 질서에 아무런 자리도 갖지 않은 세력이어야 합니다. 현 체제가 인정하는 권위로는 안 됩니다. <무슨 권위로?>라며 대드는 기득권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권외의 서민들, 일반 성도들이 일어나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든 현실에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