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아나돗의 밭



아나돗은 유다의 북방지역에 속한 유서 깊은 선지자의 고장이었습니다. 특히 그곳은 예언자적 전통의 뿌리가 깊은 곳이어서 히브리 민족의 성지나 진배없는 곳이었는데 예레미야는 바로 그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로지 자신의 조국인 유다의 패망만을 외쳤습니다. 갈수록 예언은 험악해지고 처절한 회개를 통해 새롭게 되지 않는 한 결코 유다 민족의 미래는 없다는 그의 선포는 더욱 강경했습니다. 이미 바벨론 군대는 북쪽 국경지대로 몰려들고 있었고 그 일대의 민심은 극도로 불안하여 연일 난리의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금은보화를 땅에 묻거나 재산을 챙겨 피난길에 나서기 바빴는데 예레미야의 사촌인 하나멜도 하루 속히 토지를 팔아 멀리 도망하려고 몹시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멜 역시 전통적인 제사장 가계의 종교지도자였음에도 아나돗을 지키려기 보다 속히 땅을 팔아 달아날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는 것은 당시 유다 사회가 적과 맞서 싸우기도 전에 이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사촌 하나멜의 강매에 노동자의 1년 치 수입에 해당하는 은 17세겔을 달아 주고 그 땅을 삽니다. 한때는 모두가 선망했지만 이제는 곧 폐허가 될 땅이 분명한데도 예레미야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그 미치광이 짓을 결행한 것입니다. 전쟁통에 나온 급매물이라는 이유로 값을 후려치지도 않고 제값을 다 줬을 뿐 아니라 여러 증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매매증서까지 작성하여 봉인한 후 측근인 바룩에게 맡기며 이같이 예언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사람들이 다시 이 땅에서 집과 포도원을 사게 될 것이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잘 나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어리석고 무모한 짓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읽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자들에게는 그게 대단히 의미 있는 열매를 가져올 소중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레미야가 거금 17세겔로 산 아나돗의 땅은 그걸 훗날 누구에겐가 되팔아 한 몫 잡으려는 투기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아나돗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을 실천적으로 고백한 행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자가 나타나 그 땅이 자기의 것이라고 우기며 사람들을 기만할 때, 그래서 모두가 그 사람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순간, 옹기그릇에 담긴 증서를 꺼내 보이며 통쾌하게 사태를 반전시킬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겁니다. 


믿는 자들이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돈이 되지 않을 듯 보이는 무망한 일에 은 17세겔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황당한 존재들입니다. 모두가 탐을 내며 서로 사려고 몰려드는 땅이 아니라 오히려 다들 쓸모가 없다며 버리고 떠나는 땅을 사려고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지면 그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집과 밭과 포도원을 나눠주는 꿈을 꾸며 그런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자들입니다. 모두가 팔고 떠나는 분위기가 대세인 와중에도 예레미야가 굳이 사촌 하나멜의 밭을 산 것은 사실 밭이 아니라 불굴의 희망을 산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아나돗의 사래 긴 밭을 기쁨으로 갈게 하실 거란 비전을 본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예레미야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며 절절한 기도입니다. 


제발 세상 장단에 일희일비하지 마십시오. 현실을 무섭도록 바르게 직시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접지 않았던 예레미야처럼 가진 돈을 다 주고라도 아나돗의 밭을 사십시오. 거기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